2009년 3월 23일 월요일

인간 정명훈과 지휘자 정명훈

2014년 12월 14일 추가로 붙임:

당신은 김원철의 흑역사를 발견하셨습니다. (…) 저는 '캐관광이라도 넌버로우하라'를 중요한 행동원칙으로 삼는 사람이라 이런 흑역사도 지우지 않습니다. 그러니 김원철이 목수정 씨한테 낚여서 바보짓한 현장을 즐감하세요. (…)



나중에 붙임: 저는 아래 인용한 목수정 씨 글에 적어도 절반쯤은 진실이 담겼다고 믿었지만, 지금은 대부분이 날조된 것일지 모른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이라는 단서와 함께 쓴 말은 모두 취소합니다. 제가 너무 순진했고, 너무 어리석었군요. 이렇게 생각하게 된 까닭은 2011년 12월 현재, 정명훈-서울시향 재계약 논란과 관련해 목수정이 한윤형한테 어떤 치사한 짓을 했는지, 목수정이 어떤 식으로 진실을 왜곡해 남을 헐뜯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링크 참고: ① http://weirdhat.net/xe/etc/38031http://weirdhat.net/xe/38055


http://blog.redian.org/entry/충격-지휘자-정명훈-미국에-구걸하더니-이제와-촛불

저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정명훈이라는 사람 됨됨이가 어떤지 알려주는 좋은 사료이다. 그러므로 이 게시물은 '음악학' 카테고리에 둔다.

사실 나는 저럴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다. 저 정도일 줄은 몰랐으나 그 사람 주변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지 얼추 짐작할 수 있지 않나. 그리고 정명훈이 저런 모습을 보인 일이 지금이 처음도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서는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연주하고서 이명박에게 지휘봉을 선물했고, 지난 광복절 때에는 '건국 60주년' 어쩌고 하는 기념 연주회에서 지휘를 맡았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고, 알 만한 사람은 거의 모두 '정명훈 까'이기도 하다. 안타까운 일은 정명훈이 보여주는 됨됨이에 실망한 마음이 정명훈 음악 세계를 헐뜯는 쪽으로 나타나곤 하는 일이다. 저 글을 쓴 사람은 아니지만 '알 만한 사람은' 대체로 그렇더라. 지휘봉 사건이 있고 나서 어떤 이름난 음악평론가가 태도를 싹 바꾸어 정명훈을 헐뜯는 글을 쓴 일은 이 바닥에서 제법 잘 알려졌다.

나는 꽤 오랫동안 서울시향 월간지 <SPO>에 연주회 리뷰를 써왔고, 그만큼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향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내가 보기에 '지휘자' 정명훈은 참말로 훌륭하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가 우리나라에서 과대 포장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를 맡을 만한 실력은 되고도 남는다. 그런데도 음악 외적인 이유나 부당한 이유로 정명훈 음악을 모질게 헐뜯는 모습은 정치적인 편견을 가지고 윤이상 음악을 헐뜯는 수구세력을 연상시킨다.

(정치 블로그에 트랙백을 날리는 만큼 윤이상과 관련해 부연설명을 남긴다. 윤이상은 20세기 서양음악사, 특히 독일 음악사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작곡가이며, 이른바 '동베를린 사건'으로 간첩 혐의를 받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카라얀 등 음악계 인사들이 벌인 구명 활동과 국제 외교 압력에 힘입어 풀려났으며 강제 추방으로 죽을 때까지 한국 땅을 밟지 못했다. 그 뒤로 <광주여 영원히>, <화염 속 천사>를 비롯한 정치색 짙은 작품을 다수 남겼고, 2006년 국정원 진실위 과거사 규명으로 명예를 회복했다.)

그래도 충격과 분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분들께는 내가 대신 변명을 해보겠다. 사람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는 그 사람이 이제까지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를 보면 대충 알 수 있다. 그 한계를 넘어서고 '무엇을 보고 들을지' 가릴 줄 안다면 더없이 좋겠으나 모두가 그만한 지성을 갖고 있지는 않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얼마만큼 냉철한 지성을 가지고 있는가? 당신과 다른 의견을 말한 정명훈을 얼마만큼 헤아리고 관용을 베풀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합창단, "도대체 얼마나 노래를 잘 하기에"

터놓고 말하겠다. 정명훈 기준으로, 다시 말해 유럽 기준으로 보면 한국 합창단 실력 없다. 합창단 사정 열악하기는 어디나 마찬가지이므로 당연하다. 오히려 그 어려움을 딛고 이만큼이나마 해주는 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른다. 그것을 알기에 나는 연주회 리뷰를 쓸 때 웬만하면 합창단에게는 좋은 말만 쓴다. 어떤 합창단은 연주회 도중에 템포가 엉뚱하게 빨라지며 오케스트라와 따로 놀아서 정명훈이 두 번이나 재빨리 사태 수습에 나섰는데도 나는 좋은 말만 썼다. 아닌 게 아니라 사정을 헤아리고 나면 그날 합창단은 매우 잘했고 나는 감동했으니까.

나는 옛날부터 서울시향처럼 재단을 만들어 합창단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해 왔으나 그런 반가운 일이 일어나기는 어렵다. 그러니 정명훈이 보기에 '비정규직' 합창단 하나 해체하든 말든 "다음 날이면 노래 잘하는 사람 500명 금방" 모인다는 말이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게다. 훌륭한 합창단을 왜 없애느냐고 주장해 봐야 설득력이 없다는 얘기다. 이번 해고 사태가 얼마나 부당한 일인지만을 간단명료하게 알려야 설득이 될까 말까 한데 안타깝게도 저 글을 보니 그러지 못한 듯하다.

"당신들이 나서서 지금 뭐하는 거예요?"

게다가 연주자 노조 활동은 지휘자의 예술 욕심과 드물지 않게 부딪히므로 정명훈이 노조에 무조건 호의를 보이리라는 생각은 너무 순진하다. <Meeting Venus>라는 영화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비너스>라는 조금 헛다리 짚은 제목으로 나왔는데 여기서 'Venus'는 바그너 오페라 <탄호이저>에 나오는 베누스다. (그 베누스가 비너스이기는 하지만 맥락이 조금 다르다.) 아무튼 이 영화에서 파리 오페라가 삐걱거리는 가운데 급하게 동유럽 출신 객원 지휘자를 모셔와 <탄호이저> 공연을 준비한다.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자꾸만 연습에 차질이 생기며 그 가운데 많은 부분이 노조 탓이다. 지휘자는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이런 말을 쓴다. "여기서는 예술가들이 관료인 척하고 관료들이 예술가인 척합니다. 누구도 오페라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습니다."

예술 노조 때문에 오케스트라가 망가진 사례가 실제로 우리나라에 있다. 개편 전 서울시향이 가장 대표적이다. 물론 노조만의 책임은 아니며 사정은 훨씬 복잡하다. (게다가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처럼 노조 활동이 긍정적인 성과를 거둔 사례도 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예술 관계자들이 노조 활동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까닭이 많은 부분 서울시향 사례에서 왔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도대체 그때 얼마나 망가졌기에 그러나 싶은 사람은 아래 링크만 보시라:

http://wagnerian.textcube.com/347

나는 국립 오페라 합창단을 지지하며, 그들을 도우려 한 진보신당 당원들을 지지한다. 그러나 당신들은 정명훈이 당신들을 곱지 않은 눈길로 바라볼 것을 예상하고 그를 설득할 준비를 단단히 했어야 옳다.

"촛불시위, 그게 말이나 됩니까"

정명훈이 평소에 만나는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정명훈 주위에 있는 사람이 거의 모두 이명박 측근이거나 성향이 비슷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들었을 것 같은가? 정명훈이 쇠고기 수입 협상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무엇이 있을 것 같은가? 정명훈이 촛불 든 시민을 업신여기는 게 그렇게 놀라운가? 사람은 보이는 것만 보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그리고 정명훈은 다니엘 바렌보임이 아니다.

예술은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

"정녕 예술은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단 말인가."라는 말로 글을 끝맺었으니 내가 답을 내주겠다. 예술은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 인간은 그 자신만이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살이 열반에 들지 않고 사바세계에 남아 봐야 인간을 대신 구원해줄 수는 없다. 보살도 못하는 마당에 예술에 무엇을 바라는가? 당신이 음악을 듣고 스스로 구제하는데 양분으로 삼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바흐와 베토벤과 모차르트 모두 오만한 말과 행동으로 물의를 빚은 적이 있으며, 내가 알기로 이름난 음악가 가운데 오만방자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았다. 더군다나 일제에 부역하고 전두환을 노골적으로 찬양한 시를 남긴 사람이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시를 남겼는지 참말 모르는가?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 서정주, 冬天(동천)

또 이런 시는 어떤가?

모진 바람 서리 날려 물풀은 시들고
굳세고 억척스런 오랑캐 말 교만하여라
한(漢)나라 전사 삼십만
곽표요(霍嫖姚) 장군이 거느렸노라
별빛처럼 흐르는 흰 깃털 허리춤에 꽂고
가을 연꽃잎 같은 칼날빛 칼집 밖으로 번뜩이노라
천자(天子)의 병사들 눈빛 받으며 옥관(玉關) 나설 때
오랑캐의 화살, 금빛 갑옷 위로 모래처럼 쏟아져 내리노라
용이 구름 일으키듯, 범이 바람 일으키듯, 혈투를 다해갈 때
금성이 달 속으로 들어가니 적을 쳐부술 순간이 닥쳤노라
적을 쳐부술 때라, 깃발을 짓부수어라!
오랑캐의 창자를 짓밟고 오랑캐가 흘린 피의 강을 건너라!
오랑캐의 잘린 머리를 푸른 하늘 위에 내걸고
오랑캐의 주검을 피비린내 서린 변방에 파묻어라!
오랑캐 땅에 사람 자취 없으니, 한(漢)나라의 도가 창성하도다!

- 이백(李白, 701~762), "오랑캐 땅에 사람이 없다(胡無人)"
(이상수 옮김, 오마이뉴스에서 퍼옴.)

나중에 붙임.

이 사건이 정명훈 vs 진보신당 대결구도로 비친 감이 있으며, 나부터 조금은 그렇게 여겼다. 이 일이 진보신당 공식 활동이 아니었음은 말할 나위 없으나 목수정 씨가 ― 자격이 있거나 없거나 ― 진보신당 이름을 걸고 사건을 키워버렸으니 아주 엉뚱하지는 않다고 본다.

☞ 진보신당의 거짓 연대

☞ 정명훈 떡밥, 몰랐던 사실, 또는 진실게임?

그러나 진보신당이 똘똘 뭉쳐서 '정빠'와 싸웠느냐면 그렇지는 않다. 그 증거로 진보신당 당원인 한윤형 씨가 이 사건을 두고 목수정 씨가 사고 쳤으니 진보신당이 '설거지'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 글, 그리고 막무가내로 목 아무개 씨를 편드는 사람을 신나게 '까는' 글을 모아 봤다. 한윤형 씨가 '자기편'을 겨냥해 얼마나 모진 말을 퍼부어 댔는지 감상해 보시라.

☞ 목수정을 옹호하지 않는 이유

☞ ‘마케팅’론, 정치적 주체, 그리고 목수정

☞ “돌출 행동을 수습하는 방법에 대하여” 비평

☞ 김규항과 입진보가 만났을 때 일어나는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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