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26일 화요일

말러 교향곡 10번 (데릭 쿡 판본) ― 제임스 드프리스트 / 서울시향

2010-10-07 오후 08: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 제임스 드프리스트 James DePreist, conductor

말러, 교향곡 제10번 (데릭 쿡 버전 Ⅱ)
Mahler, Symphony No. 10 (Deryck Cooke ver. 2)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입니다. 이번에는 편집을 조금 이상하게 해서 마치 김문경 씨가 지어낸 말을 제가 표절해 쓴 것처럼 되어버렸더군요. ㅠ.ㅠ 새삼 밝혀 두지만, '사나운 브람스'와 '흰 건반 베베른'은 제가 아니라 김문경 씨가 지어낸 말입니다.


구스타프 말러는 낭만주의 마지막 세대 작곡가이자 현대음악 시대를 여는데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한 사람이다. 그리고 현대음악과 관련해 말러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현대적인 관현악법에서 나오는 현대적인 음색이다. 음악학자 달하우스는 말러 교향곡 1번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돈 후안》이 발표된 1889년을 음악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으로 꼽으며 '음악적 모더니즘'이 이때부터 비롯했다고 보는데, 현대적인 관현악법이 두 작품에서 처음으로 나타났으며 음색이야말로 현대음악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현대음악말러'가 본격적으로 재조명 받은 때는 20세기 후반부터다. 불레즈현대음악 작곡가들이 이러한 생각을 이끌었고, 몇몇 작곡가는 지휘자로도 활동하며 새로운 말러 해석을 내놓았으며, 현대음악에 관심 있는 전문 지휘자들이 함께 하며 큰 흐름을 만들어 갔다. 오디오 기술이 발전하고 '마크 레빈슨' 등 현대적인 소리를 뽐내는 명품 오디오 브랜드가 성공을 거두면서 '현대음악말러'가 폭넓은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바탕 또한 마련되었다.

음악평론가 김문경은 말러를 낭만주의자로 보는 전통적인 말러 해석을 '사나운 브람스' 계열이라 이름 붙였으며, 번스타인, 텐슈테트, 바비롤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리고 현대적인 말러 해석은 '흰 건반 베베른' 계열이라 할 수 있으며 불레즈, 길렌, 샤이, 마이클 틸슨 토머스 등을 대표적인 지휘자로 꼽을 수 있다.

이번 서울시향 연주회에서 말러 교향곡 10번을 지휘한 제임스 드프리스트는 '흰 건반 베베른' 계열 해석을 선보였다. 숨어있는 성부 하나하나를 또렷하게 드러내며 다채로운 음색을 잘 살렸다는 대목에서 그렇게 볼 수 있겠는데, 그러나 소리를 예쁘게 다듬는데 신경을 많이 써서 현대음악다운 무표정함이 묻어날 때는 드물었다.

때때로 목관 악기로 맛깔스런 앙상블을 살려내어 '식물성 음색'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를테면 2악장에서 바그너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를 인용한 듯 목관 악기가 아기자기하게 얽히는 대목이 그랬으며, 이곳에서 서울시향 목관악기 연주자들은 매우 훌륭한 앙상블을 만들어 냈다.

말러 음악에 곧잘 나오는 신경질적이고 때로 악마적이기까지 한 음형은 지휘자가 달콤쌉쌀한 느낌을 앞세우고 예쁘게 다듬은 음색 속에 녹아서 큰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클라리넷 부수석 임상우가 연주한 E♭조 클라리넷이나 부악장 웨인 린이 연주한 독주 바이올린 등이 좀 더 되바라진 소리를 내지 못한 대목은 조금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달콤한 슬픔'이 가장 서럽게 흐르는 5악장에서 커다란 효과를 거두었으며, 마치 1악장부터 4악장까지가 모두 5악장을 돋보이게 하는 긴 전주곡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플루트 수석 박지은이 연주한 칸틸레나(cantilena) 선율은 너무나 애달팠고, 김미연이 연주한 큰북 소리는 심장을 내려치는 듯했다. 코다에 바로 앞서 칸틸레나 주제로 크게 부풀리는 대목에서는 누구라도 울컥하는 느낌을 받았으리라.

5악장 마지막에 현이 부풀어 오르는 이른바 '알므슈!'(Almsh!) 대목은 말러답지 않게 너무 단순하고 뜬금없다고 느껴진다. 이것은 말러가 남긴 스케치에 그리 쓰여 있다고 하지만, 만약 오케스트레이션까지 말러가 완성했다면 이 대목을 조금 더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어떻게든 손을 보지 않았을까. 이날 지휘자는 크레셴도를 써서 성긴 이음매를 만들었으나 서울시향이 만들어낸 크레셴도가 썩 매끄럽지는 않았다. 루바토를 좀 더 쓰거나 해서 부드럽게 다스렸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말러 교향곡 10번은 4단짜리 약식 총보로는 말러가 끝까지 완성했으며, 데릭 쿡 등이 완성한 판본에서 오케스트레이션과 대위구 첨가 수준을 넘어 완전히 새로 쓰여진 곳은 없다. 이런 까닭에 글쓴이는 이 작품을 사실상 완성된 악곡으로 보는 관점에 동의해 왔다. 그러나 말러를 '음악적 모더니즘'의 아버지로 본다면 이 작품에 '음색'이라는 핵심 요소가 미완성이라는 사실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완성판 녹음을 남긴 지휘자가 대부분 '흰 건반 베베른' 계열 지휘자인 까닭 또한 음색에 빈 곳을 메울 아이디어를 그들이 나름대로 갖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1악장만 연주해야 옳다는 뜻은 아니다. 데릭 쿡 판본을 가장 정통성 있는 '원전판'(Urtext) 악보처럼 여기되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판본이 꾸준히 시도되고 소개되어야 한다. 악보를 파기하라는 유언을 남긴 말러가 이것을 어찌 생각할지는 또 다른 문제이겠으나, 그리 따지자면 죽은 작곡가가 쓴 일기와 편지 따위를 연구하는 일 또한 죄스러운 일일 터이다. 어차피 관음증적 욕망을 떨치지 못한 동반자 의식을 지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열린 텍스트와 열린 마음이다. 카펜터, 마제티, 바르샤이, 또 다른 판본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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