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5일 토요일

나는 바그네리안(Wagnerian)이다

※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웹매거진에 실린 글입니다. http://g-phil.kr/?p=911

▶ 바그네리안과 크리스티안

옥스퍼드 영어 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에서는 '바그네리안(Wagnerian)'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습니다.

① (형용사) 독일 오페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와 관련 있거나 그가 쓴 음악, 음악 이론 또는 극음악 작곡 이론과 관련 있는
② (명사) 바그너 숭배자 또는 지지자

'바그너―바그네리안'은 '크리스트―크리스티안'과 짜임새가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저 좋아한다는 뜻이 아니라 거의 종교적으로 숭배한다는 뜻이지요. 바그너가 살았을 때부터 바그너―브람스 대립 구도가 있어서 이런 분위기가 손쉽게 생겨났고요. 더군다나 바그너가 민족주의를 불러내 가며 저주를 퍼부어댔던 프랑스에서도 바그네리안이 제법 많았다고 합니다.

저는 바그네리안입니다. 제가 블로그 등에서 쓰는 공식(?) 프로필에는 이런 말이 들어가지요:

(김원철은) 바그너가 《파르지팔》을 작곡하던 무렵으로부터 100년, 바그너가 서거한 지 95년 만에 태어났다. 김원철이 태어나던 날 몬살바트 성에서 성배 기사 세 명이 찾아와 축복했으며, 어려서부터 잔[杯] 종류, 특히 팥빙수 그릇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는 확인되지 않은 설이 있다. 스물두 살 되던 해에 성배의 계시를 받고 바그너 사도가 되었다. 현재 바그너 성지 순례를 위해 경전을 연구하고 있다.

이쯤 되면 저를 놀리는 말이 나올 법합니다. 이렇게요: "여러분께서는 지금 말기 증세를 보고 계십니다!"

▶ 바그너 색깔론

제가 바그네리안이라고 하면 제 정치성향이 극우적일 것이라고 오해하시는 분도 있어요. 억울합니다. 이참에 밝혀 둘게요. 저는 지난 총선 때 진보신당에 투표했습니다. 엄밀하게 따지면 '좌파'는 아니고 '자유주의자(liberalist)'입니다. 유럽 해적당(Pirate Party) 강령을 이어받은 정당이 생긴다면 지지할 생각이고요.

바그너는 반유대주의자였습니다. 「음악 속 유대주의」(Das Judenthum in der Musik)라는 글을 처음에는 필명으로, 나중에는 실명으로 발표해서 악명을 떨쳤지요. 이 글에 나오는 '유대인'의 정체는 알고 보면 두 사람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젊은 바그너에게 수많은 도움을 주었던 작곡가 마이어베어, 그리고 바그너가 평생 열등감에 시달렸던 천재 멘델스존이지요. 이 두 사람은 바그너보다 먼저 성공한 유대인 음악가로 바그너 출세길에 걸림돌이 되었고, 바그너는 당시 독일에 창궐하던 반유대 정서를 이용해서 두 사람 때리기에 성공했습니다. 심보가 고약해요. 게다가 글에 나타난 인종주의는 두 사람을 공격하는 도구일 뿐이라 하기 어렵고, 바그너의 유대인 친구들을 읊어대는 정도로는 변명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그너의 반유대주의를 파시즘으로 곧바로 이어 말하는 일은 잘못입니다. 인종주의와 파시즘이 무관하다는 얘기가 아니라 둘 사이를 이어주는 중간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이지요. 또 바그너의 반유대주의는 바그너 후손의 명백한 나치 부역 행위와도 곧바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20세기 유럽 사회가 저지른 잘못을 두고 19세기 사람인 바그너를 불러내 탓하는 일이 바르다고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또 알고 보면 바그너의 정치성향은 평면적이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19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바그너는 무정부주의자, 위험한 혁명가 등으로 불렸습니다. 푸르동, 바쿠닌 등 초기 사회주의자들과 어울리기도 했고요. 그러니까 바그너는 본디 '좌파'였습니다. 바이마르 공화국 좌파 지식인들과 독일민주공화국 바그너 학자들은 바그너를 '사회주의 유토피아의 예언가'로 선언하기도 했지요. '바그너=히틀러'라는 편견이 널리 퍼진 요즘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예술가나 예술 작품 자체가 아니라 예술가 및 작품을 둘러싼 담론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문화평론가 이택광 선생은 바그너의 반유대주의와 관련해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그리고 바그너에게 책임을 묻는 그 행위를 확대해서 이스라엘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거론하는 지점까지 나아가야한다. 말하자면 나치에게 책임을 묻는 행위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행하는 만행에 대한 책임을 묻는 행위와 함께 이루어져야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책임을 묻는다'는 윤리적 행위를 가능하게 만드는 정당성이다.

유대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은 이택광 선생이 지적한 바로 그 문제를 두고 때때로 이스라엘 정부를 강력하게 비판하곤 합니다. 또한 바렌보임은 서동시집 오케스트라(West-Eastern Divan Orchestra)를 만들어 이끄는 등 음악으로 중동 평화에 이바지하고 노벨 평화상 후보에까지 올랐으며, 역사상 가장 자주 바그너 음악을 지휘했고, 텔아비브에서 처음으로 바그너 음악을 지휘하기도 했지요. 아직도 이스라엘에서는 바그너 오페라 전막이 공연된 일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그너 음악 일부가 공연된 일은 종종 있었고, 지난해에는 홀로코스트 생존자 후손이 지휘하는 이스라엘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에서 《지크프리트 목가》를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2010년 11월에는 이스라엘에 바그너 협회가 생기고 법무부 허가까지 받았다네요.

▶ 음유시인 기사와 성배수호 기사

이번에 경기필이 공연하는 작품은 모두 기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이번 연주회에서 음유시인 기사가 나오는 두 작품을 1부에 연주하고, 성배 수호 기사가 나오는 두 작품을 2부에 연주합니다.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와 《탄호이저》는 둘 다 노래자랑 이야기입니다. 노래하는 기사가 나오고, 우승자는 신부를 얻게 된다는 설정도 비슷해요. 《파르지팔》과 《로엔그린》은 주인공이 성배 수호 기사라는 대목이 닮았습니다. 로엔그린이 파르지팔 후계자이기도 하지요.

▶ 기사 이야기, 음유시인, 그리고 게르만 전설

옛날부터 유럽에는 기사들의 모험을 그린 전설이 많았고, 기사들이 직접 음유시인으로 활동하기도 했지요. 12~14세기 독일-오스트리아에서 활동하던 기사 출신 음유시인을 민네징어(Minnesinger)라고 합니다. 바그너 오페라 《탄호이저》에 나오는 탄호이저, 볼프람 폰 에셴바흐, 발터 폰 데어 포겔바이데 등은 실존했던 민네징어입니다. '민네'(Minne)는 사랑을 뜻하는 말인데, 여기서 사랑이란 주로 정신적인 사랑을 뜻했습니다. 『게르만 신화 · 바그너 · 히틀러』를 쓴 안인희 선생은 그 까닭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원래 기사는 봉건 군주의 신하였지만 십자군 전쟁에 참전하면서 기독교 기사, 혹은 신의 기사로 불렸다.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 기독교도로서의 미덕은 헌신과 체념, 그리고 많은 경우 금욕적인 순결이었다. 십자군 전쟁 동안 기사들은 고향을 떠나 머나먼 타국에서 전쟁을 치러야 했다. 한동안 전쟁이 거의 끊임없이 계속되었고 이럴 경우 정상적이고 평화로운 결혼 생활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어떤 기사들은 결혼을 포기하고 수도사처럼 생활하기도 했다. 그들은 신분이 고귀한 부인, 대개는 자신이 모시고 있는 군주의 부인을 사모했다. 하지만 이런 사랑은 실질적인 사랑이 아니라 상징적이고 정신적인 사랑이었다. […] 기사에게 어울리는 사랑은 바로 이런 높은 사랑이고, 그것은 성모 숭배와 여러 가지로 닮은 점이 있다. 이런 높은 사랑의 전통으로부터 여성에게 깍듯한 기사도 전통이 생겨난 것이다.

오페라 《탄호이저》는 이런 배경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실존 인물이 나오기도 하지만, 실제 있었던 일보다는 초현실적인 전설이 작품에 더 많이 들어가 있지요. 탄호이저는 자신의 방탕한 생활을 교황 앞에서 뉘우친 일이 있는 사람인데, 바그너 오페라 《탄호이저》에서는 교황이 '내 지팡이에 새싹이 돋지 않으면 그대는 용서받지 못한다'라고 말합니다. 용서하지 않겠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탄호이저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지팡이에 참말로 새싹이 돋아버립니다. 더 자세한 줄거리를 이 글에서 소개하지는 않을게요.

민네징어가 12~14세기에 활동했다면, 14~16세기에는 마이스터징어(Meistersinger)라 불리는 음유시인이 활동했습니다. 마이스터징어는 대개 귀족이 아니라 장인 길드(guild)에서 활동한 평민 계층이었지요. 바그너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에 나오는 한스 작스(Hans Sachs)는 실존했던 마이스터징어입니다. 구두장이이기도 했고요.

경기필 공연에서는 '마이스터징어'라는 낯선 말을 '명가수'로 옮겼습니다.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는 기사인 '발터 폰 슈톨칭'이 마이스터징어에 도전하는 이야기인데, 바그너는 이 이야기에 빗대어 자신의 예술관을 드러내고 독일 예술을 찬양했습니다.

여기에는 숨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베토벤이 고전주의 음악 양식을 완성하고 낭만주의 시대를 열어젖힌 뒤로, 베토벤이 남긴 음악 유산을 정당하게 계승한 작곡가가 누구냐를 놓고 담론 투쟁이 일어납니다. 바그너를 중심으로 하는 파벌과 브람스 · 한슬리크를 중심으로 하는 파벌이 격렬한 투쟁을 벌였고, 그 흔적은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습니다. 이를테면 '수준 높은 애호가는 실내악을 듣는다'라는 속설은 본디 바그너 진영이 진보적이라는 주장에 대항해 브람스-한슬리크 진영에서 내놓은 논리였지요.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에서 옛 규칙을 고집스럽게 떠받드는 인물인 '직스투스 베크메서'는 바그너가 브람스-한슬리크 진영, 더 정확히는 한슬리크(Eduard Hanslick)를 비꼬려고 꾸며낸 인물입니다. 바그너는 대본을 쓸 때 '한스 리히'(Hans Lich)라는 이름을 썼다가 너무 노골적이라서 '베크메서'로 바꿨다네요. 한슬리크는 당시 이름을 떨치던 음악학자이자 평론가로 바그너와는 사이가 매우 나빴지요. 베크메서와 대비되는 두 사람, 즉 새로운 시도를 망설이지 않는 발터 폰 슈톨칭과 '온고지신' 원칙을 가장 훌륭하게 실천하는 진정한 명인 한스 작스는 바그너 자신을 나타낸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성배와 현자의 돌

바그네리안이 생겨나는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설정이 주는 매력을 중요하게 꼽을 수 있을 듯합니다. 이번 경기필 연주회 포스터를 보고 사람들이 '게임 포스터 같다'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당연합니다. 바그너 작품이나 요즘 유행하는 롤플레잉 게임(Role-playing game)이나 모두 신화와 마법의 세계를 그리거든요. 바그너 작품에 나오는 고유명사를 인터넷 검색해 보면 게임 관련 글이 더 많이 뜨기도 합니다.

《파르지팔》은 아서(Arthur) 왕을 따르던 '원탁의 기사'들이 성배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합니다. 명검 '엑스칼리버'와 마법사 '멀린'이 나오는 바로 그 전설이지요. 가웨인(Gawain), 랜슬롯(Lancelot), 퍼시벌(Percival), 트리스트람(Tristram), 갤러해드(Galahad) 등이 원탁의 기사로 유명하고요. 이 가운데 성배를 찾는 데 성공했던 기사는 퍼시벌, 달리 쓰면 파르지팔입니다.

퍼시벌(파르지팔)이 성배를 찾았다는 이야기는 그냥 전설이고, 실제로는 십자군 전쟁 때 템플기사단(Templar)이 찾았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템플기사단이 십자군 전쟁에 참전할 때 단원 수는 명분과 어울리지 않게 9명뿐이었고, 사실은 단원들이 솔로몬 성전 터에 천막을 치고 10년 넘게 발굴·탐사 작업을 벌였다고 합니다. 거기서 뭘 찾아내거나 배웠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돌아와서 갑자기 큰돈을 벌고 어마어마한 권력을 거머쥐었습니다. 화폐를 발명한 사람들이 바로 템플기사단이기도 하지요.

그랬다가 갑자기 망했습니다. 템플기사단에 큰 빚을 진 프랑스 왕 필리프 4세가 템플 기사단을 이단으로 몰아 숙청해 버렸지요. 이 사건은 상식에 한참이나 어긋나는 일이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미국 대통령이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를 해체하고 주요 인물을 국가반역죄로 처벌하는 일과 비슷하거든요. (FRB는 민간단체이면서도 달러 화폐를 독점 발행할 수 있는 엄청난 권리를 가지고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며, 대통령이라도 함부로 할 수 있는 단체가 아닙니다.) 그래서 템플기사단 숙청 사건과 관련해 수많은 음모론이 생겨났습니다.

중세 기사이자 음유시인이었던 볼프람 폰 에셴바흐(Wolfram von Eschenbach)는 『파르치팔』(Parzival)이라는 서사시를 썼습니다. 바그너는 이 작품을 중요하게 참고해서 《파르지팔》(Parsifal)을 썼습니다. 볼프람을 《탄호이저》에 등장인물로 쓰기도 했고요. (에셴바흐는 성이 아니라 출신지입니다. 중세시대 사람이라 성이 없어요.)

『신의 지문』 등을 쓴 작가 그레이엄 핸콕은 볼프람이 템플기사단원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학술적으로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는 주장인데, 내용이 재미있습니다. 볼프람이 『파르치팔』을 쓰기 시작한 때는 십자군이 살라딘 군대에 패하여 예루살렘 왕국이 함락된 직후이며, 『파르치팔』에 묘사된 배경은 아서 왕 시대가 아닌 십자군 원정 당시와 맞아떨어진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 그레이엄 핸콕은 『파르치팔』에 묘사된 지리는 성궤가 숨겨진 위치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여기까지 오면 본격적인 음모론입니다. 볼프람은 성배가 돌(石)이라 했습니다. 음모론자들은 성배가 돌과 관련 있는 지식이며, 그 지식은 영생 또는 영혼 전이와 같은 초과학적 능력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중세시대에 유행했던 연금술은 불로불사를 가능하게 한다는 '현자의 돌'(elixir)을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고 합니다.

이집트에 피라미드가 세워진 때는 신석기시대였지요. 돌도끼 휘두르던 그때에 현대과학으로도 비밀을 밝히지 못하는 피라미드가 세워질 수 있었던 까닭을 학술적으로 설명하는 일은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선사시대'라고 부르는 옛날, 또는 그보다도 앞선 먼 옛날에 고등문명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배란 그 초고대문명에서 나온 파편이라고요.

음모론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단체 프리메이슨(Freemason)은 본디 '자유석공조합'이라는 뜻이지요. 숙청에서 살아남은 템플기사단원들이 만든 단체가 바로 프리메이슨이라고도 합니다. (프리메이슨은 서울 이태원, 경기도 파주, 그리고 부산에도 지부를 두고 있다고 합니다.)

노파심에서 덧붙이지만, 음모론에 너무 빠지지는 마시고 재미로만 봐 주세요. 단일세력이 세계를 암중 지배한다는 식의 거대음모론은 위키리크스(WikiLeaks)가 폭로한 기밀문서만 봐도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지요. 중요한 것은 바그너가 《파르지팔》에서 나타낸 상상의 세계와 철학적 메시지를 이해하는 일입니다.

바그너는 1872년 베를린에서 프리메이슨 가입 신청을 했다가 "은근한 압력"을 받고 포기했다고 합니다. 그 뒤에 《파르지팔》을 썼지요. 바그너는 《파르지팔》에 나오는 성배기사단이 템플기사단과 복장이 비슷하다고도 했습니다. 바그너의 장인이었던 리스트는 1841년 프리메이슨 프랑크푸르트 지부에 가입했고, 1870년 부다페스트 지부에서 프리메이슨 3도 회원(Master)이 되었습니다. 또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등 이름난 음악가 가운데 상당수가 적어도 한때나마 프리메이슨 또는 관련 단체에서 활동했습니다.

바그너는 성배가 '왕의 피'를 뜻하는 "상 레알"(Sang Réal)에서 온 말이라 했습니다. 영화 《다빈치 코드》 또는 원작 소설을 보면 비슷한 얘기가 나오지요? 다만, 바그너는 '왕의 피'를 혈통 개념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파르지팔》을 보면 암포르타스 왕이 성창(롱기누스의 창)에 찔려서 피를 흘리는 얘기가 나오는 정도이고, 수정으로 된 잔(Kristallschale)이 성배로 나옵니다. 앗, 그러고 보니 수정은 광물, 그러니까 돌이지요!

《로엔그린》은 《파르지팔》 이후에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로엔그린은 파르지팔의 뒤를 이어 성배수호기사를 이끌게 되는데, 바그너 오페라 《로엔그린》은 로엔그린이 몬살바트 성을 떠나 활동하는 이야기입니다. 로엔그린은 볼프람 폰 에셴바흐가 쓴 서사시 『파르치팔』(Parzival)에 처음 나오는 이름이며, 원작에서는 '로에란그린'(Loherangrin)이었다가 13세기 후반에 전해진 판본에서 로엔그린(Lohengrin)으로 바뀌었습니다.

▶ 파르지팔의 고통과 깨달음에 대하여

《파르지팔》에는 이런 계시가 나옵니다. "자비심으로 깨달으리라, 순수한 바보여"(durch Mitleid wissend, der reine Tor).

이 말은 《파르지팔》에서 바그너가 나타내고자 한 철학적 메시지를 대표하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철학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래서 독일에서 철학을 전공하시는 이진 선생이 쓴 글 「파르지팔: 함께 슬퍼할 것인가 함께 기뻐할 것인가」를 빌려 올까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아는 (der doch alles weiss)' 구르네만츠도, 윤회로 영원히 반복되는 세월동안 무수한 일들을 보아온 쿤드리도(denn nie lügt Kundry, doch sah sie viel), 성스러운 자 성배왕 티투렐도, 직접 계시를 들은 암포르타스도, 성스러움의 이면에서 사악한 마법을 알아낸 클링조어도 그 앎 때문에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알 수 없다. 그러니 "너 정말 그냥 바보일 뿐이로구나!"라는 말을 할 때, 구르네만츠는 사실 자신도 모르는 맥락에서 진실을 말한 것이 된다.

"순수한 바보"만이 깨달음을 얻어 구원자가 될 수 있는 까닭은 지식이 깨달음을 방해하기 때문이라네요. 지식이 아니라 자비심(Mitleid)으로 깨달아야 하지요. 자비심을 뜻하는 독일어 "Mitleid"는 함께(Mit) 고통받는다(leiden)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남의 고통을 그저 아는 일과 그것을 함께 느끼는 일은 다릅니다.

그 좋은 예가 될 '책상 살인자(Schreibtischmörder)'라는 말이 있다. 나치의 경험이 만들어 낸 이 단어는 매사에 얌전하고 규정과 관습에 따라 모범적으로 살는 듯 '정상적으로' 보이는 인간이 거리낌없이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내는 아이러니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이러한 극단적인 예가 아니더라도 많은 경우 '남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평범한 삶을 위한 안전핀이 된다.

반면, 남의 고통을 느끼는 것 즉 자비심은 그 자체가 일상을 벗어나는 경험이자 실천이다. 자비심은 함께 고통을 겪는 삶으로,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보살행'으로 연결된다. 필자의 부족한 이해력의 한계 안에서나마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참된 자비심(Mit-leid)는 곧 보살행(mit-leiden)이다.

이진 선생은 바그너가 영향받았던 쇼펜하우어 철학과 불교 사상을 아우르며, '함께 고통받는' 일에서 그치지 말고 '함께 기뻐하는'(Mit-Freude)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바그너가 음악으로 나타내고자 한 진정한 철학적 메시지라고 말합니다.

보살은 일체중생을 구제하려고 열반에 들지 않지만, 역설적이게도 실제로 보살에 의해 구제되는 중생은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각자는 (자신 안에서 불성을 깨닫는 것을 통해) 각자를 구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살행은 이러한 의미에서 보살의 '자기' 수행과 동일할 것이다. 자리이타(自利利他)요, 살며 살게하라(Live and let live)는 지혜이다.

그리고 이럴 때, 고통받는 자에게 내미는 손길은 더이상 '함께 슬퍼하는 것도 함께 고통을 겪는 것도 Mit-Leid(en)' 아니다. 이러한 생각은 차라리 "함께 기뻐한다 Mit-Freude"는 말로 비로소 제대로 전달된다.

[…] 어리석음과 폭력이 반복되는 잔인한 현실을 함께 바라보면서도 "만인은 만인에 대한 신(神)(homo homini deus)"이라고 말한 철학자가 있으니 바로 스피노자다. 고통받는 이들을 더 이상 동정하지 말라고, 동정이 아닌 사랑을 외친 자가 있으니 니체다. 어쩌면 고통받는(leidend) 신(神) 디오니소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생각들은 모두 삶의 필연적인 수동성, 그에 따르는 고난, 절망과 슬픔의 정서을 바탕에 깔고 시작한다. 그렇지만 유한한 존재로 태어난 인간은 수동적인 체험 속에서도 자신 안의 신적 본성을 발견하는 기쁨을 얻을 수 있어 이로써 점차 자유로워지며(스피노자), 오히려 가장 쓰디쓴 운명까지 모든 수동적인 조건들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운명에 대한 사랑, amor fati)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며(니체), 갈기갈기 찢겨졌던 신은 죽음을 딛고 부활한다(디오니소스).

[…] 그런데 쇼펜하우어의 사상에 심취해있던 1858년 10월 바그너가 베젠동크 부인에 보낸 한 편지를 보면 자신의 본성 그리고 예술적 성취의 근원이 연민(Mitleid)임을 고백하면서도 사랑 속에서 너무도 어렵게 얻어지는 기쁨(Mit-Freude)은 그에 대한 단순한 보완 이상이라고 적고 있음이 흥미롭다.

'함께 기뻐함'은 사랑으로 얻을 수 있는 기쁨이로군요. 이 대목에서 경기필이 지난 3월에 공연했던 말러 교향곡 3번을 떠올려도 좋지 않을까요?


― 티켓 예매 ―

예술의 전당 SACTic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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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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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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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션티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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