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2일 목요일

로저 노링턴 & 임현정 vs 프란츠 슈트레제만 & 노다메

로저 노링턴이 지휘하는 취리히 체임버 오케스트라. 역시 명불허전이었습니다. 길게 얘기하기는 뭣하고, 해석이 특이했던 한 대목만 기록해 놓을게요.

© 1984 by Bärenreiter-Verlag, Kassel

모차르트 교향곡 1번 1악장입니다. 윗단부터 오보에, 호른, 현악기이지요. 마디 40, 마디 44 등에서 반복되는 바이올린 하행 음형을, 어제 취리히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악보대로 연주하지 않고 데타셰(détaché) 연주법을 쓰더군요.

(음과 음 사이를 부드럽게 이어 연주하는 것을 '레가토'라 하고, 끊어서 연주하는 것을 '스타카토'라 하지요. 악보에는 스타카토보다 더 날카롭게 끊어 연주하라는 '스타카티시모'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데타셰는 음 하나 하나를 활을 바꿔 연주하는 것으로 레가토와 스타카토의 중간 성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제 연주가 신기해서 나중에 지휘자한테 물어봤습니다. 로저 노링턴 경 하는 말이, 윗단에 있는 오보에가 같은 음형인데 스타카토 표시가 없다, 그래서 바이올린이 거기에 맞춰 주는 편이 소리가 더 좋다, 라고 하더군요. 말 듣고 보니 신기합니다. 모차르트는 왜 이렇게 해놨을까요? 오보에와 바이올린 가운데 하나는 악보를 배신해야 음악적으로 말이 됩니다. (악보는 학술적인 검증을 거친 이른바 '비평판'(Critical Edition)입니다.) 저라면 오보에 연주자에게 스타카토로 연주하게 하겠습니다.

나중에 붙임: 로저 노링턴 경이, 홍콩 공연 오픈 리허설 때 제가 저걸로 질문한 얘기를 했다나 봅니다. 홍콩대학교 유학생 제보. ^^

《노다메 칸타빌레》를 아시는 분 많으실 겁니다. 원작 만화, TV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이 모두 큰 흥행을 기록한 작품이지요. 한국에서 《내일도 칸타빌레》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한다고도 합니다.

피아니스트 '노다메'는 음악적으로나 일상생활에서나 참 제멋대로인 사람이지요. 그러나 치아키 선배와 마에스트로 슈트레제만이 음악적 중심을 잡아주면서 노다메의 숨은 천재성이 드러나게 됩니다.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가 종영되었을 때, 음악 좋아하는 지인들과 함께 수다를 떨다가 이런 얘기를 나눴던 기억이 납니다.

나오덕: 노다메가 연주한 쇼팽 피아노 협주곡 말이죠. 연주가 참 '노다메스럽게' 훌륭하더라고요. 참 멋졌어요.
김원철: 그거, 랑랑 연주래요.
나오덕: 헉! 아놔, 제 귀가 썩었나 봅니다. 엉엉엉...

피아니스트 랑랑,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연주가 참 특이하다는 데는 다들 동의할 겁니다. 랑랑과는 이미지가 많이 다르지만, 연주 특이하기로는 랑랑보다 더한 '세르히오 티엠포'도 있지요. 제가 예전에 썼던 연주회 ☞리뷰에서 살짝 인용하자면:

세르히오 티엠포가 협연한 슈만 피아노 협주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파격 또 파격이었다. 첫 타건부터 톡톡 튀는 것이 심상치 않더니, […] 세상에, 이건 슈만이 아냐! 장난꾸러기처럼 종잡을 수 없는 다이내믹과 '제비 본색'으로 어르고 달래는 루바토는 차라리 감정 과잉 슈만을 놀리는 듯하다. 오케스트라는 피아노에 정신없이 끌려다니기만 한다. 제멋대로도 이런 제멋대로가 없으니 화를 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만약 학생이 이렇게 연주했다면 틀림없이 선생님께 크게 꾸지람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속 슈만 망령을 날려버리고 나니 티엠포의 연주에 설득당하고 만다. 그래, 슈만은 없었다. 오직 티엠포, 티엠포! 나 그대에게 불타는 팬심(fan心)을 바칠 테야요!

피아니스트 임현정 씨도 특이한 연주 때문에 논란이 되곤 하지요.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또 싫어합니다. 저는 어제 임현정 씨 연주를 실연으로 처음 들어 봤는데요, 로저 노링턴이 지휘를 맡는다면 '슈트레제만과 노다메' 같은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리라는 예상이 옳았음을 확인했습니다.

로버트 레빈의 모차르트를 들어 보면 알 수 있듯이, 고전주의 음악 양식은 흔한 선입견보다 훨씬 자유분방하지요. 어제 연주는 레빈과는 살짝 다른 임현정식 자유로움이 노링턴의 고전주의 양식과 그야말로 '콘체르토'(concerto)를 이룬 흥미진진한 연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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