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23일 금요일

차이콥스키 《사계》, 라흐마니노프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 쇼팽 발라드 1번 g단조

2014년 10월 통영국제음악당 공연 프로그램북에 실렸던 글입니다. 잊어버리고 있다가 생각나서 올립니다.


▶ 차이콥스키 《사계》

차이콥스키 《사계》는 1년 열두 달에 곡 하나씩을 붙인 모음곡입니다. 11월(삼두마차)과 6월(뱃노래)이 특히 유명하지요. 짜임새가 어렵지 않으니까 골치 아픈 설명은 하지 않을게요. 출판업자 니콜라이 베르나르드가 작품을 의뢰했고, 곡마다 표제를 붙일 것을 제안했으며, 출판하면서는 곡마다 시구를 따다가 붙였습니다.

1월: 난롯가에서(Au coin du feu)

고요한 행복 한 모퉁이에
밤은 황혼 빛깔 옷을 입었네
불씨는 벽난로에서 스러지고,
양초는 모두 타버렸네. ― 알렉산드르 푸시킨

2월: 카니발(Carnaval)

활기 넘치는 참회의 화요일
이내 커다란 축제로 넘쳐나리라. ― 표트르 뱌젬스키

3월: 종달새의 노래(Chant de l'alouette)

꽃들이 들판에 어른거리고,
별들이 하늘에 반짝거리고,
종달새 노랫소리는
푸른 심연을 채우네. ― 아폴론 마이코프

4월: 아네모네(Perce-neige)

청초한 아네모네 꽃,
마지막 아네모네 꽃,
지난날 시름의 마지막 눈물,
새로운 행복의 첫 번째 꿈. ― 아폴론 마이코프

5월: 별이 빛나는 밤(Les nuits de mai)

밤이여!
이 모든 행복이여!
내 조국 북쪽 나라에 감사하노라!
얼음의 왕국에서,
눈보라와 눈송이의 나라에서,
5월이 어찌나 싱그럽게 날아드는지! ― 아파나시 페트

6월: 뱃노래(Barcarolle)

바닷가에 가자꾸나
파도가 발등에 입 맞추는 곳으로.
신비로운 슬픔을 머금고
별빛이 쏟아지는 그곳으로. ― 알렉세이 플레셰예프

7월: 농부의 노래(Chant du faucheur)

어깨를 들썩여라,
팔을 흔들어라!
한낮의 바람이
얼굴을 숨쉰다! ― 알렉세이 콜초프

8월: 추수(La moisson)

곡식이 익었다,
식구들이 다 자란 호밀을 베어낸다!
건초를 모아라,
마차 끄는 음악이 밤새 소리치네. ― 알렉세이 콜초프

9월: 사냥(La chasse)

때가 되었다!
나팔 소리 들린다!
사냥복 입은 사냥꾼들 말에 올랐다
이른 새벽부터 보르조이 개가 뛰어다닌다. ― 알렉산드르 푸시킨(그라프 눌린)

10월: 가을 노래(Chant d'automne)

가을, 가련한 정원이 스러져 내린다,
빛 바랜 나뭇잎이 바람에 흩날린다. ―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11월: 삼두마차(Troïka)

고독 속에 길을 응시하지 마라,
삼두마차를 따라 달려나가지 마라.
그대 가슴 속 갈망의 두려움을 완전히 억눌러라. ― 니콜라이 네크라소프

12월: 크리스마스(Noël)

어느 성탄절 밤 소녀들이 운명을 점쳤다네
슬리퍼를 벗어서 문밖으로 던졌다네. ― 바실리 주콥스키

▶ 라흐마니노프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

이 작품에서 '코렐리' 주제는 사실은 '라 폴리아'(La Folía) 주제로, 코렐리가 작곡한 것이 아니라 17세기 또는 그 이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선율입니다. 수많은 작곡가가 자신의 작품에 이 주제를 인용했을 만큼 너무나 유명하지요. 코렐리 바이올린 소나타 5번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라흐마니노프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라 폴리아' 주제로 시작해 20가지 변주가 이어지고, 그 사이에 간주곡이 들어가며, 마지막에는 '라 폴리아'로 돌아오는 짜임새입니다. 깊어가는 가을밤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가슴 시린 선율을 라흐마니노프의 낭만적 음악 어법으로 풀어내는 이 작품은, 다채롭게 변화하는 '라 폴리아' 주제를 따라가는 것이 감상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라 폴리아' 주제

▶ 쇼팽 발라드 1번 g단조

발라드는 본디 14~15세기 프랑스 정형시가의 일종이었습니다. 그러나 쇼팽의 발라드는 피아노 독주곡으로, 쇼팽이 '발라드'라는 기악곡 형태를 새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악곡 형식으로서 발라드는 사실 변종 소나타 형식이라 할 수 있겠는데, 형식에 관한 설명은 여기서 줄일게요.

쇼팽 발라드의 '구조'를 따지는 일이 학술적인 의미 이상을 갖기 어려운 까닭은, 앞서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편에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에 관해 드렸던 말씀과 비슷합니다. 이른바 '베토벤 딜레마'에 관해 모르시는 분은 ☞해당 페이지를 읽어 보세요.

차이콥스키가 '베토벤 딜레마'로 괴로워했던 것과 달리, 쇼팽은 처음부터 이 딜레마로부터 자유로웠던 작곡가라 할 수 있습니다. 쇼팽은 신기하게도 베토벤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은 듯합니다. 마치 모차르트 음악 양식이 곧바로 낭만주의로 이어진 듯해요. 그래서 '베토벤 패러다임'으로 쇼팽 음악을 분석하면, 듣기 좋은 선율과 달리 충격적인 음악 어법에 놀라게 됩니다.

쇼팽의 발라드와 관련해 중요한 특징은 기악곡이되 그 속에 '이야기'가 있는 음악이라는 것입니다. 쇼팽 발라드 1번은 로만 폴란스키 감독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중요한 장치로 쓰여 더욱 유명해졌지요. 영화를 보신 분은 그 장면을 떠올리셔도 좋겠고, 또는 저마다 간직한 추억을 떠올리셔도 좋습니다. 그런 가운데 선율을 따라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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