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22일 목요일

차이콥스키 환상 서곡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2014년 10월 통영국제음악당 공연 프로그램북에 실렸던 글입니다. 잊어버리고 있다가 생각나서 올립니다.


▶ 차이콥스키 환상 서곡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Francesca da Rimini)는 13세기 실존 인물로,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등장해 더욱 유명해진 사람입니다. 프란체스카는 이탈리아 리미니 지방 영주 아들인 조반니 말라테스타와 정략결혼했다가 조반니의 동생이자 유부남인 파올로와 불륜을 저지르고 조반니에게 살해당했다고 하지요.

『신곡』에서 프란체스카와 파올로는 욕정에 무절제하게 휩쓸린 죄로 지옥 2층 '색욕 지옥'에서 끝없이 폭풍에 휩쓸려 다니는 형벌을 받습니다. 단테는 두 사람에게 동정을 표시하기도 했고, 시인 보카치오는 프란체스카의 아버지 귀도 다 폴렌타가 '못생긴 절름발이' 조반니 대신 파올로를 결혼 전까지 조반니로 속였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차이콥스키는 프란체스카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를 낭만주의적 음악 어법으로 표현했습니다. 음악 속에 줄거리가 다 담겨 있지만, 무엇보다 '색욕 지옥'의 폭풍을 휘몰아치는 반음계로 묘사한 대목이 흥미롭습니다.

▶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표제가 없는 기악곡에 관해 말하려면 아무래도 작품의 짜임새가 중심적인 내용이 됩니다. 그런데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의 짜임새를 해설하는 일은 참 쓸모없다고 느껴집니다. 학자나 연주자가 필요해서 스스로 분석하는 일은 의미가 있겠지만, 감상이 목적이라면 그냥 선율 속에 몸을 맡기는 게 낫지 않나 싶어요. 왜 그런지 설명하려면 베토벤 얘기부터 해야 합니다.

베토벤은 고전주의 음악 양식을 확장, 완성하고 그 한계를 깨트려 낭만주의로 가는 길을 열었던 사람입니다. 베토벤이 서양음악 역사에 남긴 유산은 너무나 거대해서, 19세기 작곡가에게 마치 넘을 수 없는 산과도 같았지요.

문제는 그 유산이 낭만주의 시대정신과 맞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베토벤을 계승하면서도 낭만주의 시대정신을 잃지 않는 일은, 그래서 작곡가에게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슈베르트, 슈만, 멘델스존, 리스트, 바그너 등이 저마다 아이디어를 짜내어 해결책을 내놓았고, 베토벤의 작곡 기법을 극한까지 발전시켜버림으로써 문제를 정면 돌파한 브람스가 (적어도 형식적인 측면에서) 베토벤의 가장 훌륭한 계승자로 평가받습니다.

차이콥스키는 '베토벤 딜레마'와 관련해서라면 낙제점을 면하기 어려운 작곡가입니다. 차이콥스키는 작품의 짜임새가 엉성하고 장황하다는 평을 받아왔고, 그 점에서 피아노 협주곡 1번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차이콥스키는 이 문제로 몹시도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차이콥스키가 이 작품을 헌정하려 했던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루빈시테인이 곡을 완전히 다시 써야 한다며 혹평했고, 차이콥스키는 이 말에 격분하여 '한 음도 고칠 수 없다'며 악보를 지휘자 한스 폰 뷜로우에게 보내 세르게이 타네예프 협연으로 런던에서 초연해 버렸다는 일화는 유명하지요(나중에 결국 고치기는 했습니다.) 저는 이 일이 '베토벤 딜레마'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차이콥스키는 서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멜로디 메이커라고 하지요. 그 자체로 작곡가의 천재성을 드러내는 선율들이 음악 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악곡을 지배합니다. 작품을 이루는 '뼈대'는 아름다운 선율로 된 '피와 살'에 묻혀 존재감을 잃고 맙니다. 이것이 차이콥스키 음악의 장점이자 단점이 됩니다.

이 작품의 형식을 굳이 말하자면, 1악장은 도입부가 비정상적으로 긴 자유로운 소나타 형식, 2악장은 세도막 형식, 3악장은 론도 형식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이 전통적인 악곡 형식에 작품을 끼워 맞춘 결과일 뿐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식으로 분석하는 일은 '베토벤 패러다임'으로 작품을 바라보는 일이 되고, 그래서 이 작품의 장점보다 단점에 집중하기 쉽습니다. 제가 제안하는 감상법은 '숲보다 나무'에 집중하면서 아름다운 선율과 화음, 그리고 연주자의 화려한 불꽃 테크닉을 즐기는 것입니다. 쉬운 얘기를 길고 어렵게 써버렸지만, '배토벤 패러다임'에서 벗어나려면 필요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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