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31일 일요일

모차르트: 현악사중주 14번 K. 387 / 야나체크: 현악사중주 2번 '비밀편지' / 슈베르트: 현악사중주 14번 '죽음과 소녀'

통영국제음악당 '예루살렘 콰르텟' 공연 프로그램북에 실릴 글입니다.



모차르트: 현악사중주 14번 K. 387

“이 여섯 아들이 전혀 부족함 없기를 감히 소망합니다. 모쪼록 이를 너그러이 받아 주시고 이들의 아버지이자 후견인 그리고 친구가 되어주십시오. 지금부터 내 자식들에 관한 모든 권한을 당신께 양도합니다. 만약 아비의 모자란 눈을 피해간 잘못이 있다면 부디 너그럽게 보아주시고, 결함에도 불구하고 제 자식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다른 이에게도 당신의 자비로운 우정이 지속되기를 소망합니다. 당신의 가장 소중한 친구이자 충실한 친구로 남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모차르트가 하이든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지난 5월 20일 통영국제음악당 '모차르트 위크'를 열었던 '아벨 콰르텟' 공연 해설에서 음악평론가 김문경 씨가 소개한 바로 그것이지요. 이날 아벨 콰르텟이 연주한 현악사중주 19번 K. 465 '불협화음'이 모차르트의 이른바 '하이든 콰르텟' 가운데 여섯째 '아들'이라면, 오늘 예루살렘 콰르텟이 연주할 현악사중주 14번 K. 387은 첫째 '아들'입니다. '봄'이라는 표제가 붙어있기도 하지요.

1악장은 깔끔한 소나타 형식, 2악장은 미뉴에트와 트리오 형식, 3악장은 두도막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2악장과 3악장은 제1주제-제2주제 관계가 살짝 소나타 형식 느낌이 나는 것이 당시로써는 특징적이기도 하고요. 4악장은 푸가토(fugato), 그러니까 푸가(fugue)와 비슷한 짜임새로 된 소나타 형식입니다. 교향곡 41번 '주피터' 4악장과 닮은꼴이지요. 온음 4개로 된 주제로 시작하는 것도 닮았습니다. 이 주제로 된 '벽돌'이 어떻게 쌓이는지 머릿속으로 그려 보면서 감상하면 음악이 매우 흥미진진할 거예요. 벽돌 모양이 자꾸만 바뀌니까 긴장을 놓치면 안 됩니다!


야나체크: 현악사중주 2번 '비밀편지'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박범신 작가의 소설 『은교』에 나오는 유명한 말이지요. 레오시 야나체크 현악사중주 2번 '비밀편지'를 들을 때면 저는 이 말을 떠올리곤 합니다. 야나체크의 '은교'는 처음 만났을 때 20대 후반이었던 유부녀 카밀라 스퇴슬로바(Kamila Stösslová)였는데, 야나체크는 그보다 38살 더 많았지요. 두 사람은 편지를 700통 넘게 주고받았지만, 사실은 야나체크가 짝사랑을 했을 뿐인 듯합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키스 이상의 신체 접촉은 없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카밀라를 만단 뒤로 야나체크는 걸작을 줄줄이 쏟아냅니다. 대기만성형 작곡가였던 야나체크의 '뮤즈'가 카밀라였던 셈이지요. 그리고 현악사중주 2번 '비밀편지'를 발표할 때쯤에는 드디어 카밀라가 야나체크의 사랑을 받아주기 시작했는데, 카밀라와 함께 소풍을 갔던 야나체크는 그만 감기에 걸리고, 그것이 폐렴이 되어 죽고 맙니다. '비밀편지'의 공식 초연은 그 직후에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야나체크가 음악으로 쓴 연애편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원어 표제인 "Listy důvěrné"에서 체코어 důvěrné(두볘르네)는 '비밀'이라는 뜻도 있지만, 영어 'intimate'에 해당하는 뜻도 있습니다. 성적인 의미를 포함해서 친밀하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우리말 표제로 '비밀 편지'가 널리 쓰이기는 하지만, '은밀한 편지'가 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후기 낭만주의 음악 양식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몇십 년 뒤를 내다보게 하는 현대성이 공존하는 야나체크의 대표작입니다. 그래서 현대음악에서 곧잘 들을 수 있는 충격적인 음향이 작곡가의 불타는 사랑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장치가 되고 있지요. 특히 4악장이 끝날 때쯤 애틋한 선율과 폭력적인 소음이 교차하는 대목이 백미입니다. 그리고 바로 앞서 마치 시계 초침이 딸깍거리는 듯한 음형은 마치 작곡가가 제 죽음을 예견한 듯해 안타까움을 더합니다.


슈베르트: 현악사중주 14번 '죽음과 소녀'

'사(死)의 찬미'라는 노래가 있지요. 워낙 옛날 노래라 지금에 와서는 노래보다 제목이 훨씬 더 유명한데요, 죽음을 찬미하는 염세적인 생각은 옛날부터 은근히 인기가 있었나 봅니다. '죽음과 소녀'도 그런 작품입니다. 원작은 마티아스 클라우디스가 쓴 시로, 죽음을 두려워하는 소녀에게 그저 편안히 잠들기만 하면 된다고 죽음이 유혹하는 내용입니다. 슈베르트는 이 시에 곡을 붙였고, 같은 제목으로 현악사중주를 작곡하면서 그 선율을 2악장에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리트 선율을 기악곡에 재활용한 것은 피아노 5중주 A장조 '송어'와 닮은꼴이지요. '리트 악장'이 변주곡 형식이라는 점도 닮은꼴입니다. 팔딱거리는 송어의 생명력이 느껴지는 곡조와 죽음을 찬미하는 곡조는 데칼코마니 같습니다.

1악장은 소나타 형식으로, 제2 주제에 이어지는 경과구가 마치 발전부처럼 쓰인 점이 특이하고, 그래서 제시부를 반복한 뒤 진짜 발전부에 이르는 짜임새가 참신하다고 느껴집니다. 3악장은 스케르초와 트리오 형식입니다. 1악장에 베토벤 교향곡 9번 2악장과 같은 절박함이 있다면, 3악장에는 말러 교향곡 9번 2악장과 같은 악마적인 쾌(快)가 있습니다.

4악장은 론도-소나타 형식인데, 그보다 4악장 전체를 지배하는 타란텔라(tarantella) 리듬이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 〈셰에라자드〉 4악장에도 나오는 그 리듬이지요. (지난 10월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을 기억하시는 분 제법 되실 듯합니다.) 〈셰에라자드〉의 타란텔라가 '광란의 춤'이라면, '죽음과 소녀' 사중주에 나오는 타란텔라는 '죽음의 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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