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5일 목요일

프로코피예프 첼로 소나타 / 라흐마니노프 첼로 소나타

통영국제음악당 공연 프로그램북에 실릴 글입니다.


프로코피예프: 첼로 소나타 C장조 Op. 119

"인류 – 얼마나 당당하게 들리는 말인가!"

러시아 대문호 막심 고리키가 쓴 희곡 『밑바닥에서』에 나오는 말입니다. 고리키는 밑바닥 인생 '사틴'의 입을 빌려 사람보다 귀중한 것은 없다는 메시지를 던졌고, 프로코피예프는 첼로 소나타 악보 앞머리에 이 말을 인용했지요. 서슬 퍼렇던 스탈린 정권에서 프로코피예프가 '형식주의자'라는 딱지가 붙어 시달림을 받던 때입니다.

프로코피예프는 1악장을 여는 느리고 무거운 선율로 인간의 존엄성을 말하는 사틴의 대사를 나타낸 듯합니다. 얼핏 들으면 도입부처럼 들리지만, 이어지는 짜임새를 보면 이것이 제1 주제라고 봐야 하지요. 이 선율을 이루는 조각들이 곡 전체에 걸쳐 다양하게 변형 · 발전합니다.

서늘한 피아노 선율로 시작하는 경과구와 귀에 쏙 들어오는 제2 주제, 갑자기 빨라진 음형으로 나타나는 발전부와 '인류' 주제가 피아노로 나오는 재현부 등으로 조금 꼬여 있지만, 1악장은 소나타 형식입니다. 2악장은 스케르초 악장으로, 해학 속에 때로는 냉소가 흐르는 듯합니다.

3악장을 듣고 있으면, 작곡가는 권위주의적 독재 권력에 맞서는 방법으로 비장한 각오가 아닌 웃음을 잃지 않는 희망을 택하겠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맥락은 전혀 다르지만, 브람스가 교향곡 3번에 사용한 유명한 모토 '자유롭게 그러나 즐겁게(Frei aber Froh)'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곡이 끝날 무렵에는 '인류' 주제가 크게 부풀려 나오고, 첼로가 찬란한 빛을 뿌리며 빠르게 날아다닙니다.

라흐마니노프: 첼로 소나타 g단조 Op. 19

이 작품은 본디 제목이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g단조'입니다. 첼로와 피아노가 이 곡에서 음악적으로 대등하다는 사실을 강조한 제목이지요. 탁월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던 라흐마니노프가 실내악곡을 쓰면서 피아노의 비중을 높인 일은 어찌 생각하면 자연스럽습니다. 브람스 등은 교향곡 같은 협주곡을 작곡하기도 했지요.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노 협주곡 2번과 비슷한 시기에 이 곡을 썼습니다. 교향곡 1번을 발표했다가 대실패한 뒤로 자존감에 심각한 타격을 받고, 정신 치료를 받으며 약 3년 만에 회복한 참이었지요. 그래서인지 1악장 도입부에서 느껴지는 우울함이 범상치 않습니다. 그러나 피아노 협주곡 2번만큼은 아니고, 이어지는 제1 주제는 러시아 낭만주의의 애수가 느껴지는 정도입니다.

2악장은 현실과 맞서 싸우려는 '투지'가 느껴지고, 3악장에서 애수에 잠겼다가 4악장에서 밝아지는 짜임새입니다. 1악장과 4악장은 제법 깔끔한 소나타 형식, 2악장과 3악장은 세도막 형식입니다. 이 가운데 2악장을 들을 때마다 저는 슈베르트 가곡 '마왕'이 생각나요. 슈베르트가 '마왕'에서 19세기 초반 포르테피아노의 메카닉을 활용해 악마적인 느낌을 표현했다면, 이 곡에는 현대 피아노에 어울리는 악마성이 담겨 있습니다. 피아노 파트를 연주하기가 특히 어렵다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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