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21일 월요일

2015 올해의 공연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2015년이 얼마 남지 않은 오늘, 한 해를 돌아보며 특별히 기억에 남은 공연을 되새겨 볼까 합니다. 좋은 공연이 집중적으로 열렸던 통영국제음악제가 먼저 생각나기는 하지만, 음악제 준비로 너무 바빴던 탓에 정작 공연은 구경도 못 했거나 피곤한 상태로 얼핏 듣거나 해서 공연 자체를 즐길 여유는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가장 기억에 남은 공연은 5월에 있었던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 연주회입니다. 하이든-모차르트 시대 음악은 어떤 악기와 배치, 조율법 등을 쓸 것인가 하는 문제를 빼고 나면, 연주 자체에 해석이 개입할 여지가 많지 않지요. 그래서 이런 곡을 연주하면 연주자와 악단의 기본 바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 연주는 제가 이제까지 들어본 가장 탁월한 모차르트였다고 생각해요.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피아니스트 마르틴 슈타트펠트 또한 대단했습니다.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마치 모차르트 시대 포르테피아노처럼 연주했던 것이 무엇보다 놀라웠지요. 이런 효과를 내고자 피아니스트는 조율사에게 특별한 요청을 했다고 합니다. 피아노 해머(hammer)마다, 그리고 음높이에 따라 재질을 달리해서 일일이 천 같은 것을 끼워 넣고 페달도 미세조정을 새로 하는 등 요구사항이 아주 까다로웠다네요.

제가 피아노 메카닉을 잘 몰라서 자세한 내용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조율사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니 결국 해머가 현을 때릴 때 생기는 지렛대 원리를 상당 부분 무력화시켜서 건반을 가볍게 만들려는 의도였나 보더군요. 지렛대 원리를 일부 무력화한 일은 피아니스트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피아노 의자를 최대한 낮추어 무릎을 피아노 밑으로 깊숙이 집어넣고 각도를 90도로 만들었던 것이지요. 슈타트펠트는 이 자세로 건반을 부드럽게 쓰다듬듯이 두드렸고, 페달은 살금살금 밟곤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스타인웨이 피아노의 현대적인 음색과 옛날 포르테피아노의 가볍고 섬세한 움직임의 장점이 모였습니다. 모차르트 피아노곡의 반짝반짝하는 음색이 조금 어둡게 바뀌었지만, 이날 연주한 협주곡 24번과는 잘 어울리더군요. 바흐를 연주할 때에는 더할 나위 없이 멋졌고요. 협주곡 카덴차에서 바흐 '음악의 헌정' 중 3성부 리체르카레를 인용한 것도 참신했습니다. 연주자에게 나중에 그 얘기를 했더니, 사실은 모차르트가 협주곡 24번에서 그 주제를 티 나지 않게 인용했다면서 즉석에서 피아노를 연주해 확인시켜 주더군요!

그밖에 예루살렘 콰르텟, 자비네 마이어 클라리넷 리사이틀, 임선혜 &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 다니엘 호프 & 아르테 델 몬도 오케스트라, 이안 보스트리지 & 쉐페이 양, 슬로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드레스덴 성 십자가 합창단 & 서예리 등 멋진 공연이 많았지만, 지면이 짧으니 이 얘기를 길게 쓰지는 않을게요.

이제 통영이 아닌 다른 곳에서 열렸던 공연 가운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을 두 개만 꼽아볼까 합니다. 하나는 올여름 휴가 때 베를린에서 들었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회입니다. 그때 「특급 오케스트라와 1급 오케스트라의 차이」라는 글에서 썼듯이,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바우에서 유럽의 여러 오케스트라를 집중적으로 경험하고 난 직후에 베를린필 연주를 들은 터였지요. 그래서 이 악단의 압도적인 기량에 더욱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지난 12월 12일 서울에서 있었던 유로기아 남성합창단 연주회였습니다. 고등학교 동문으로 구성된 아마추어 합창단이었기에 오히려 지휘자의 탁월함이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드러난 충격적인 명연이었습니다. 지휘자는 아직 젊은 나이에 은퇴를 선언하고 부산에서 은거하다가 거의 3년 만에 예외적으로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구자범 선생이었습니다. 그 이름만으로도 서울까지 찾아갈 이유는 충분했지요.

지휘자는 아마추어 남성합창단이라는 심심한 편성으로 마치 오페라 한 편을 보는 듯한 짜임새를 만들어 내었고, 저는 마치 마법에 홀린 듯 음악에 빠져드는 경험을 했습니다. 지휘자가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음악으로 표현했기에, 저는 자세한 설명을 덧붙여서 그것을 해치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영혼을 뒤흔드는 감동에 전율했다고만 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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