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8일 금요일

두 가지 아방가르드: 프랑스 파리와 오스트리아 빈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운율(rhyme)과 보격(meter) 없이도 음악적이며, 영혼의 시적 충동과 몽환 세계의 넘실거림에 어우러질 만큼 유연하면서도 강약이 살아있는 시구(詩句)의 마법을 한때 꿈꿔보지 않은 이가 우리 가운데 누가 있는가?" ― 샤를 보들레르 (1862년)

"내가 추구하는 음악을 말하자면, 나는 그것이 영혼의 시적 충동과 몽환 세계의 자유분방함에 어우러질 만큼 유연하면서도 강약이 살아있는 음악이기를 바란다." ― 클로드 드뷔시 (1886년)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은 보들레르와 드뷔시가 쓴 글을 나란히 인용하면서 1900년대 프랑스 음악을 설명했습니다. 드뷔시가 프랑스 상징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보들레르의 말을 인용해 자신의 예술관을 드러낸 일은 새삼 흥미롭군요. 충동, 자유분방함, 유연함은 드뷔시 음악을 설명하는 키워드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논리와 발전을 최고 가치로 여기던 기존 패러다임과 크게 다른 것이었습니다. 이 패러다임은 18세기 계몽주의와 시민사회 담론, 그리고 고전주의 음악 양식 등에서 유래한 것이고, 인류 문명이 차츰 발전하면서 세상이 유토피아로 나아갈 것이라는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이 패러다임이 베토벤에 이르러 '어둠에서 광명으로'(per aspera ad astra)라는 구호에 맞는 음악이 되었고, 그러한 음악의 중심지는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이 활동했던 오스트리아 빈이었습니다. 그리고 20세기 빈에서는 신빈악파(Second Viennese School)가 새로운 음악 혁명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신빈악파를 대표하는 쇤베르크, 베베른, 베르크는 조성이 없는 음악을 추구함으로써 사람들에게 현대음악이 어렵다는 선입관을 심어 버린 작곡가이지요. 그러나 이성과 논리와 발전을 믿던 시대에 이러한 음악이 나타난 것은 필연이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음악학자 크리스티안 카덴이 한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역사의 완성"이라 할 만한 것이었지요.

이런 맥락에서 프랑스 파리는 오스트리아 빈과 여러모로 달랐습니다. 드뷔시에 이어 에릭 사티, 모리스 라벨 등이 전혀 다른 패러다임을 만들어 가고 있었고, 한 세대 뒤에 나타난 작곡가들에게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은 '라이프 스타일 모더니즘'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지요.

"말하자면 두 가지 아방가르드가 나란히 형성되고 있었다. 파리 사람들은 밝은 일상의 세계로 옮겨갔다. 빈 사람들은 반대 방향으로 가면서, 성스러운 횃불로 무시무시한 심연을 밝혀 나갔다." 음악평론가 알렉스 로스는 1900년대 유럽 음악을 이런 말로 정리했습니다.

20세기 전반에는 '빈 음악'이 '파리 음악'보다 우세했습니다. 이른바 '음렬주의'라는 작곡기법으로 발전하기도 했지요. 그리고 '발전론적 패러다임'을 따르지 않았던 스트라빈스키가 파리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을 때, 스트라빈스키는 유명 논객들에게 모진 비난을 듣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아도르노는 "그는 지붕을 뜯어내 버렸고, 그래서 이제 그의 대머리 위로 빗물이 흐른다"라 했고, 블로흐는 "속이 빈 것으로는 피리를 불기 쉽다"라 했지요.

20세기 후반, 좀 더 정확히는 68혁명을 전후로 해서 상황은 달라집니다. '후기 구조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말이 유행했고, '구조가 아닌 형상'을 앞세우는 음악이 나타났으며, 이런 맥락에서 한국 출신 작곡가 윤이상이 발표한 음악이 유럽에서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지요. 무조음악의 구호인 '불협화음의 해방'을 비틀어 '협화음의 해방'을 주장하는 작곡가들도 나타났습니다.

올해 통영국제음악제에서는 현대음악의 두 가지 뿌리를 각각 확인할 수 있는 공연이 있어 흥미롭습니다. 2e2m(되즈되젬) 앙상블은 드뷔시 〈목신의 오후 전주곡〉과 라벨 〈우아하고 감성적인 왈츠〉를 앙상블 곡으로 편곡해 연주하고, 살아있는 프랑스 작곡가 베르나르 카바나의 아코디언 협주곡 '카를 코프'를 연주합니다.

카잘스 콰르텟은 베토벤과 베베른, 그리고 베베른의 음악적 후예라 할 수 있는 쿠르타그의 현악사중주를 연주합니다. 또한, 한국 작곡가 전현석의 신작 현악사중주곡 '날다'를 세계초연할 예정이기도 합니다. 벨러 버르토크, 필립 글래스, 진은숙 등 현대음악 작곡가들 얘기를 앞으로 좀 더 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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