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5일 금요일

필립 글래스와 미니멀리즘 음악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 듣고 싶은 음악도 많고 어쭙잖게 주워들은 지식도 제법(?) 있던 시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읽던 누나가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곡을 아느냐고 제게 묻더군요. 저는 그 곡이 '시타르'라는 인도 악기를 록 음악 역사상 최초로 도입한 곡이며, 이후 '롤링스톤스'라는 밴드가 시타르를 아주 멋지게 쓴 음악을 발표했고, 그 곡이 유명 TV 드라마에 쓰였다는 사실을 신이 나서 설명해 주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1960년대 록음악, 반전운동, 히피 문화, 인도 명상의 유행 등은 같은 맥락을 공유하는 것들이었습니다. 롤링스톤스의 〈Paint It Black〉이라는 곡이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하는 미국 드라마 〈머나먼 정글〉에서 사용된 것도 우연이 아니더군요. 음악학자 이희경은 이와 관련해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반전운동과 민권운동의 바람이 거세게 일던 1960년대 미국에서 젊은이들의 반문화 운동이 절정을 이룬 행사다. 1969년 8월 15일,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첫날 밤. 인도의 전통 현악기인 시타르를 연주하는 샹카르(Ravi Shankar)가 다섯 번째 무대에 올랐다. […] 샹카르는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비틀즈의 멤버 해리슨(George Harrison)에게 시타르를 가르친 스승으로, 이미 1967년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관중 수만 명을 사로잡았다."

딴 얘기를 조금 하자면, 인용한 책은 최근에 출판된 『메트로폴리스의 소리들』입니다. 여유가 있으면 이 책을 정독한 다음 서평을 쓰고 싶지만, 통영국제음악제 준비로 정신이 없어서 필요한 부분만 읽고 조금 인용했습니다. 이희경 선생은 저 유명한 도널드 J. 그라우트의 『서양음악사』 번역에 참여하신 음악학자이며, 『리게티, 횡단의 음악』 · 『작곡가 강석희와의 대화』 등의 저자이자 『진은숙, 미래의 악보를 그리다』를 번역하신 분이기도 합니다. 이분이 쓴 책이라면 믿고 구입하실 것을 추천해요.

한편, 미국 작곡가 필립 글래스는 1960년대에 파리에서 나디아 불랑제를 사사하면서 라비 샹카르 음악을 처음 접하고, 그것을 계기로 인도 음악에 빠져들었습니다. 인도와 티베트 등을 여행하면서 요가와 명상을 배우기도 했다네요.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짧은 음형이 조금씩 바뀌면서 되풀이되는 곡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라 몬테 영, 테리 라일리, 스티브 라이히 등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아이디어를 사용한 작품을 내놓았고, 이것을 흔히 '미니멀리즘' 음악이라 부릅니다.

미니멀리즘 음악은 인도 음악의 명상적이고 때로는 환각적인 성격을 서양음악 테두리 안에서 수용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은 무조음악이 대세이던 주류 현대음악에 미니멀리즘이 대안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조성이 분명히 있으면서도 낭만주의 시대 기능화성과 목표지향적인 패러다임을 비껴갔기 때문이지요. 현대음악은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음악이 이렇게 생겨났고, 대중음악에서 미니멀리즘을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필립 글래스는 록 음악가 데이비드 보위와 브라이언 이노의 음악에서 주요 음형을 따다가 교향곡을 쓰기도 했지요.

헨릭 구레츠키, 아르보 패르트 등 어마어마한 대중적 성공을 거둔 현대음악 작곡가도 나타났고, 이들의 주요 작품도 미니멀리즘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또 올해 통영국제음악제와 나란히 열리는 ISCM 세계현대음악제에서 연주될 곡 가운데 이를테면 미시 마촐리 합창곡 〈Vesper Sparrow〉(저녁 참새) 또한 미니멀리즘 음악이라 할 수 있어요. 이 곡은 참새들이 노래하는 애니메이션이 눈에 보일 듯 재미난 작품이라 현대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 번 들으면 홀딱 반할 거라고 장담합니다.

무엇보다 이번 통영국제음악제에서는 필립 글래스 오페라 《미녀와 야수》가 공연됩니다. 그리고 작곡가 필립 글래스를 직접 만나볼 수 있는 "필립 글래스: 저녁의 대화" 공연에서는 필립 글래스가 직접 연주하는 필립 글래스 피아노 음악과 더불어 통영국제음악재단 플로리안 리임 대표가 필립 글래스와 대화를 나눌 예정입니다.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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