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8일 금요일

무대 위 돌발상황에 관하여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이 거의 끝나갈 무렵입니다. 오케스트라가 으르렁거리고, 그에 맞서 협연자가 바이올린을 사납게 긁어대며 음악이 절정에 오른 바로 그 순간, 지휘자가 힘차게 휘두른 왼손이 협연자의 바이올린을 강타합니다! 바이올린이 협연자의 손을 떠나 무대 바닥에 처박힙니다. 연주가 중단되고, 공연장은 순간 싸늘한 적막에 휩싸입니다.

며칠 전 인터넷에 올라온 돌발 사고 영상으로 화제가 되었던 장면입니다. 협연자는 악기가 망가진 것을 확인하고 지휘자에게 보여줍니다. 영상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협연자는 악장의 바이올린을 빌려서 연주를 끝마쳤다고 하네요. 관객은 따듯한 박수로 연주자들을 격려했고요. 바이올린은 불행 중 다행으로 수리가 가능한 정도로만 망가졌다고 합니다.

오케스트라 공연 중에 이런 사고가 일어난다면, 연주자들은 관습화된 대응 매뉴얼에 따라 행동합니다. 지휘자와 먼 쪽에 앉은 연주자와 차례차례 악기를 교환하는 것이지요. 객석에서 바로 보이는 '바깥 줄'에 앉은 연주자의 악기가 부러지면, 같은 보면대를 쓰는 동료와 악기를 교환해서 사고 수습 현장이 눈에 덜 띄도록 합니다. 그리고 가장 뒷줄에 앉은 연주자가 망가진 악기를 들고 퇴장했다가 예비용 악기를 가지고 슬그머니 재입장해 연주에 참여하게 되지요.

제가 모 오케스트라에서 일할 때는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 3악장이 절정으로 치달았을 때 악장님 활이 부러지는 사고가 실제로 있었습니다. 이때 절차에 따라 사고를 수습하는 동안 연주는 중단 없이 이어졌지요. 현이 끊어지는 일은 때때로 일어나지만 활이 부러지는 일은 흔치 않은데, 악장님이 활을 힘차게 긋다가 보면대 모서리에 걸렸을 것으로 추측하더군요.

지난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2위에 입상했던 대만계 에스파냐 연주자 리멍포(李孟坡; Mon-Puo Lee) 씨도 본선 2차 경연 때 활이 부러지는 사고를 겪었지요. 그때는 독주 중이라 그냥 심사위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퇴장한 다음 예비용 활을 가지고 와서 경연을 이어갔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이 방송에서 들려준 재미있는 일화도 있습니다. 오케스트라 협연 중 줄이 끊어져서 '당연한 절차로' 악장이 쓰던 바이올린을 넘겨받아 공연을 이어갔는데, 악기를 넘겨받는 순간 악장이 움찔하며 안 주려고 버텨서 서로 당황했다고요. 그 악기가 모 재단 후원으로 장기 대여한 것인데, 다른 이에게 빌려줘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걸려 있어서 일순간 판단을 망설였던 것이라나요.

이참에 무대에서 일어나는 다른 돌발사고 얘기도 조금 할게요. 젊은 지휘자는 손에 익은 소형 악보를 지휘자용 악보 대신 공연 때 사용하기도 하는데요, 문제는 악보 크기가 작아서 펼쳐진 페이지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제 지인한테 들은 얘긴데, 유럽에서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하는 공연을 보던 중 지휘자 악보가 '휘리릭~' 넘어가 버리는 사고가 일어났다네요. 두다멜은 오른손으로 지휘봉을 흔들면서 왼손으로 페이지를 열심히 찾느라 진땀을 뺐다고요!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는 지난해 독일 브레멘에서 독주회를 하던 중 짧은 쉼표가 나올 동안 재빨리 악보를 넘긴다는 것이 그만 악보를 바닥에 엎질러 버리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임시로 피아노 반주자의 악보를 보면서 연주를 이어갔는데, 그동안 피아노 악보를 넘겨 주던 이른바 '페이지 터너'(page turner)가 사태를 수습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페이지터너가 피아노 악보를 넘기다 같은 실수를 해버려요!

오페라 공연 때에는 워낙 돌발상황도 잦고 안전사고가 일어나기도 해서 일일이 사례를 쓰기도 뭣해요. 그런데 사고가 잦으니 그만큼 미신도 많다지요. 이를테면 음악가들이 서로 격려하는 뜻으로 널리 쓰는 '토이, 토이, 토이'(toi, toi, toi)라는 독일어도 사실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하며 침을 뱉는 주술적인 의미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국식으로 하면 '퉤퉤퉤'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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