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9일 토요일

2008.02.29. 메시앙 투랑갈릴라 교향곡 - 폴 김 / 하라다 다카시 / 정명훈 / 서울시향

2008년 2월 29일(금)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폴 김 (피아노), 하라다 다카시 (옹드 마르트노)

Messiaen, Turangalila-symphonie



내가 그동안 정명훈에게 갖고 있던 불만 하나는 그가 지휘하는 서울시향 연주회 프로그램에 현대음악을 거의 넣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괜한 투정이기는 하다. 그동안 베토벤과 브람스를 거치며 단원들 기본기 쌓기 바빴고, 아직도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현대음악은 객원 지휘자들이 드물지 않게 연주하고 있고 <진은숙의 아르스노바> 시리즈도 있다. 그런데도 정명훈 지휘로 현대음악을 들어보고픈 욕심을 버리지 못하던 가운데, 마침내 때를 만났다. 올해가 메시앙 탄생 100주년, 정명훈이야말로 작곡가 본인에게 극찬을 받은 메시앙 전문가가 아니던가! 정명훈 못지않게 메시앙 전문가로 이름 높은 피아니스트 폴 김과 옹드마르트노(Ondes Martenot) 전문 연주자 하라다 다카시도 데려왔다. '정명훈 효과'에 힘입어 <투랑갈릴라 교향곡> 한 곡만 연주한다는데도 연주회장은 꽉꽉 찼다.

그리고 무대를 가득 메운 타악기들. <투랑갈릴라 교향곡>은 독주 악기가 둘이나 있는 작품이지만, 이날 진짜 주인공은 타악기 연주자들이었다. 시향 타악기 주자들은 실력이 정말 뛰어나다. 타악기 수석 에드워드 최는 내가 전에도 몇 번 지면을 빌어 칭찬한 적이 있거니와 다른 사람들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팀파니 말고는 고전 레퍼토리에 타악기가 잘 쓰이지 않아서 실력 발휘할 기회가 자주 없었다가 드디어 이날 솜씨를 맘껏 뽐냈다. <투랑갈릴라 교향곡>은 현대음악 중에서도 타악기가 많이 쓰인 작품이다. 어지간한 마니아들도 낯설어할 만한 악기도 더러 쓰였으니 이참에 악기 이름부터 익혀보자.

객석에서 봤을 때 피아노 왼쪽에 있던 풍금(Harmonium) 닮았으면서 소리는 카랑카랑한 악기는 첼레스타(Celesta)다. 그 왼쪽에 있던 실로폰 닮은 악기 둘은 글로켄슈필(Glockenspiel)인데, 실로폰이나 마림바(Marimba)와는 달리 나무막대가 아닌 쇠막대로 되어 있다. (우리가 초등학교 음악 시간에 쓰던 장난감 실로폰은 사실은 글로켄슈필이다.) 무대 맨 왼쪽에 있던 실로폰 닮았으면서 '웅웅웅' 하는 소리를 내던 악기는 비브라폰(Vibraphone)이다. 비브라폰 바로 뒤에 있던 길쭉한 쇠막대는 차임(Chime; Tubular bell)이다.

오케스트라 맨 뒤에 있던 까만 볼링 공에 막대기를 꽂은 듯한 모양에 막대를 잡고 흔들어 '쌕쌕'하는 소리를 내던 악기는 마라카스(Maracas)다. 그 옆에 나무토막을 채로 때려서 소리 내던 악기는 말 그대로 우드블록(Woodblock)이고, 6악장에서 우드블록 대신 더 깊고 작은 소리를 내던 악기는 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목탁(Temple block)이다.

그밖에 심벌즈, 트라이앵글, 탬버린, 작은북(Snare drum), 큰북이 있었고, 9악장에 나오던 통이 긴 북은 탕부랭(Tambourin provençal)이다. 심벌즈를 눕혀놓은 악기들은 크기가 작은 순으로 터키 심벌즈(Turkish cymbals), 서스펜디드 심벌즈(suspended cymbals), 중국 심벌즈(China cymbals)다. 줄에 매달아 놓고 채로 때리면 '구아앙!'하는 매우 큰 소리를 내는 징 닮은 악기는 탐탐(Tam-tam)이다. 북 종류인 톰톰(Tom-tom)과 전혀 다른 악기이니 주의할 것.

사람들 눈길을 가장 많이 끌었을 옹드마르트노(Ondes Martenot)는 전자악기답지 않게 '클래식하게' 생겨서 더욱 신기했다. 하라다 다카시의 연주는 음반으로 듣던 다른 연주자들보다 '아날로그하게' 들리기도 했다. 왼손이 떨릴 때마다 음색이 어찌 그리 다채롭게 바뀌는지!

그런가 하면 폴 김의 피아노는 어찌 들으면 전자악기같은 음색이었다. 작곡가가 기계적이고 타악기적인 음형을 잔뜩 써놓았기 때문이겠는데, 또 어찌 들으면 마림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특히 6악장에서 피아노가 '또랑또랑'하고 글로켄슈필과 첼레스타가 '까랑까랑'하고 비브라폰이 '웅웅웅'하면서 세 가지 음색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하늘나라 꽃밭이 눈에 그려질 듯했다.

타악기 주자 못지않게 빛났던 조연은 금관 연주자들이었다. 금관이 무르고 실수가 잦은 게 우리나라 오케스트라이기에 나는 더더욱 이날 훌륭한 연주에 진심으로 감동했다. 특히 트럼펫 수석이 금가루 똑똑 떨어질 듯 빛나는 소리로 힘찬 연주를 들려준 것이 마음에 쏙 들었다. 다만, 욕심을 부리자면 트럼펫이 섬세한 맛을 조금만 더 살렸으면 싶었다. 이를테면 1악장 마디 59에서 트럼펫 세 대가 빠른 반복 음형을 이어가는 부분은 포르티시모(ff)에서 피아노(p)로 재빨리 바뀌면서 마치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잠자리가 갑자기 날개를 파르르 떨며 멀리 날아가는 듯한 느낌이 재미있는데, 이날 연주자들은 악기 사이에 음을 이어받는 것은 부드러웠으나 제1 트럼펫이 포르티시모가 아닌 메조포르테(mf) 정도로 시작한 탓에 '깜짝 효과'와 원근감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았다. 피아노가 어택(attack)을 제대로 못 맞춰주는 바람에 마치 트럼펫이 반 박자 빨리 들어간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다른 연주자들도 믿을 수 없을 만큼 훌륭했다. 작품이 작품이니만큼 실수가 쌓이면서 조마조마한 순간이 더러 있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웬걸, 작품에 어지간히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면 실수를 찾아낼 수 없을 만큼 완벽에 가까운 연주였다.

정명훈의 해석은 바스티유 오케스트라와 함께 녹음한 음반과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5악장과 10악장 마지막 음의 늘임표(fermata)를 몹시 과장하고 심지어 어마어마한 크레셴도를 준 것이 재미있었다. 연주회장이 떠나가도록 불고 긁고 두드려대는 소리에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이런 과장은 자칫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어 위험하지만, 이날은 연주회장의 생생한 분위기를 업고 큰 효과를 거두었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연주자가 이런 '오버 액션'을 할 때에는 '클래식' 음악 연주회랍시고 점잖게만 있을 게 아니라 대중음악 연주회처럼 음악이 덜 끝났어도 박수와 환호를 보내면 어떨까. 너무 발칙한 생각인가?

연주가 끝나고 정명훈이 인사하면서 앞자리에 앉아있던 어린이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아이가 고전음악을 어려워하거나 고리타분하게 생각한다면 현대음악을 먼저 들려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이가 어릴수록 편견이 없어서 현대음악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단, 가정용 오디오로는 현대음악의 참맛을 알기 어려우므로 연주회장에 직접 데려가는 게 좋다. 서울시향의 현대음악 특집인 <진은숙의 아르스노바> 연주회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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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8.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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