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26일 화요일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7번 / 베토벤 교향곡 3번 ― 김선욱 / 로렌스 르네스 / 서울시향

2010-09-16 오후 08: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 로렌스 르네스 Lawrence Renes, conductor
협연 : 김선욱 (피아노) Sunwook Kim, piano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7번 Mozart, Piano Concerto No. 27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 Beethoven, Symphony No. 3 "Eroica"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원전연주' 또는 '정격연주'라는 말이 유행하며 격렬한 찬반 논란이 일어난 지도 제법 오래되었다. 학술적 뿌리를 찾자면 수십 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한국에서만 해도 1985년에 원전연주 첫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요즘은 '원전'이네 '정격'이네 하는 말이 교조적이라 하여 시대 악기 연주(Period Performance) 또는 역사주의 연주(Historically Informed Performance) 등으로 고쳐 부른다.

그리고 요즘은 굳이 옛 악기와 옛 조율방식을 쓰지 않고도 옛 연주법 등을 현대 악기에 응용하는 연주도 드물지 않다. 아바도, 래틀, 하이팅크 등 역사주의와 관련이 없을 듯한 지휘자가 녹음한 베토벤 교향곡 음반에서도 이러한 유행을 확인할 수 있고, 정명훈서울시향 베토벤 사이클에서 역사주의를 일부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정명훈-서울시향베토벤 교향곡 9번을 연주할 때 4악장 도입부에서 트럼펫이 악보에 없는 주선율을 연주하는 관행을 따르지 않는 것도 역사주의와 관련이 있다.

이날 서울시향을 지휘해 베토벤 교향곡 3번을 연주한 로렌스 르네스 또한 역사주의 유행을 따랐다. 호른을 한 대 추가한 것을 빼면 악보에서 지시한 2관 편성을 정확히 지켰고 현악기 숫자도 평소보다 줄였다. 현악기는 글쓴이가 객석에서 세어본 바로는 6-5-4-3-2 편성이었는데, 5-5-5-5-4 등 관현악곡을 연주할 때 곧잘 쓰이는 편성과 견주면 새로웠다. 저음 현을 줄여 역사주의에 걸맞은 날렵한 소리를 노리면서도 바이올린은 오히려 더 늘여서 대형 연주회장에서도 음량이 너무 모자라지 않게끔 하려는 뜻으로 풀이되며, 결과는 썩 훌륭했다.

현악기 배치 또한 널리 쓰이는 미국식이 아니라 제1 바이올린과 제2 바이올린을 무대 양쪽에 펼쳐 놓고 첼로 등을 가운데로 모으는 유럽식이었다. 이런 배치는 악단 기량이 모자라면 앙상블이 엉망으로 망가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으나 이날 연주는 제법 훌륭했다. 사실은 지난해 11월에 정명훈이 지휘한 모차르트구도자의 엄숙한 저녁기도》에서도 비슷한 배치를 쓴 바 있지만, 이날 연주에서는 그때보다 큰 편성으로 게다가 객원 지휘자가 지휘해도 훌륭한 앙상블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는 대목이 뜻깊다.

유럽식 악기 배치는 제1 바이올린과 제2 바이올린이 선율을 주고받으면서 '스테레오' 효과를 내기 좋다는 큰 장점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작곡가들이 이런 배치를 고려하고 쓴 곡도 많다. 이날 연주에서는 무엇보다 푸가토에서 그 장점이 두드러졌으며, 복잡하게 얽힌 성부 하나하나가 무대 위에 고르게 늘어서서 사방으로 통통 튀어 오르는 듯한 느낌이 매우 멋있었다.

비브라토를 줄여 살짝 거칠지만 산뜻한 음색을 낸 것도 역사주의 연주가 보이는 특징인데, 이날 연주에서는 비브라토가 줄기는 했으나 '기름기'가 조금 덜 빠진 소리를 냈다. 지휘자가 의도한 바일 수도 있고, 올곧은 소편성이 아닌 탓도 있겠고, 어쩌면 서울시향이 아직 이런 연주에 익숙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연주회장 음향을 생각하면 이런 음색도 나쁘지 않았다.

템포는 빨랐다. 베토벤 시대 또는 그 이전 현악기로는 호흡이 긴 프레이즈를 만들기 어려우므로 템포가 빠를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연주법이 결정될 때가 잦다. 그 느낌을 현대 악기로 연주할 때에도 살리려는 태도 또한 역사주의 연주가 보이는 중요한 특징이다. 그밖에 날렵한 리듬과 악센트 등도 이날 연주에서 나타난 역사주의적 특징이었다.

베토벤 교향곡 3번을 시대 악기로 연주할 때와 현대 악기로 연주할 때 차이가 가장 두드러지는 곳을 한 곳만 꼽으라면 1악장 클라이맥스에서 제1 바이올린이 F-F♯-G-A♭-G-F 선율을 연주하는 마디 665~70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폭발하는 듯한 스포르찬도로 음악적 긴장감을 순식간에 끌어올리는 역할을 현악기가 이끌어야 하는데, 이 대목을 날렵한 맛이 떨어지는 현대 악기로 연주하면 제맛을 내기가 쉽지 않아서 호른과 트럼펫을 잔뜩 부풀린 단순한 크레셴도에 그치기 쉽다. 이날 연주는 역사주의적 방향에 힘입어 현대 악기 연주치고는 스포르찬도가 제법 훌륭했다.

김선욱이 협연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7번은 오케스트라가 피아노에 맞춰 준다기보다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반주를 하는 듯한 기막힌 어울림이 인상 깊었다. 김선욱은 어려서부터 학교 친구들 반주를 도맡아 하기로 이름이 높았다는데 그 덕분일까. 게다가 고전주의 시대 작품은 해석과 관련해 고민할 곳보다는 맛깔스러운 앙상블에 마음 쓸 곳이 많을 때가 잦아서 김선욱의 '반주 본능'이 더욱 빛나는 듯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제 목소리 낼 곳은 다 내는 놀라운 솜씨를 보여 주었으니, 과연 김선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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