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16일 수요일

[인터뷰] 지휘자 박은성

(글: 김원철 · 사진: 최종혁)

※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웹매거진에 실린 글입니다.
원본 링크: http://g-phil.kr/?p=476

지휘자 박은성. 말이 필요 없는 한국 지휘계의 거목.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인터뷰 기사를 포함해서 수많은 글이 넘쳐 난다. 그러나 딱히 마음에 드는 것은 없다. 그래서 직접 박은성을 만났다. 2011년 11월 6일 오후 정동극장 안에 있는 카페에서 만났다.


김원철: 먼저, 이번 연주회 프로그램을 고르신 의도가 궁금합니다.
박은성: 아니,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물어보니까 연주를 한 번도 안 했다고 하더라고요. 드보르자크를(교향곡 7번). 어떤 의미에서 보면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앞으로 해야 될 큰 과제 중의 하나가, 레퍼토리 개발이라고.
김원철: 그렇죠. 네.

(박은성 지휘자는 본디 '레퍼토리'가 아닌 레퍼투아(répertoire)라는 낱말을 일관되게 사용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이해를 돕고자 국어사전에 나오는 좀 더 쉬운 말로 바꾸었다.)

▶ 자주 연주되지 않는 명곡을 소개해야

박은성: 어떤… 늘 하는 곡들만 자꾸 하는 것보다도, 이제는, 현대곡이라든지 새로 작곡된 곡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옛날 곡이라도, 그냥 스탠더드(standard) 레퍼토리 중에서도 경기필이 안 한 곡이 좀 많지 않나… 내 생각이 그래서, 이러구 저러구 생각하다 보니까 (드보르자크) '신세계'(교향곡)도 많이 했을 거고, 그 담에 8번 교향곡도 굉장히 많이 했을 거고, 그런데 7번 교향곡을 얼마나 했나… 내가 한 번 (경기필 단원들한테) 물어봤어요… 한 번도 연주해 본 적이 없는데요… 몇 십년 전에 옛날 단원들이 해봤는지 어떤지 모르겠는데, 최근에 연주된 일이 없어가지고, 그걸 한 번 했으면 좋겠다… 나도 옛날부터 차이콥스키나 뭐 이런 거, 잘하는 거 있잖아요? 그거 하면 좋지 나도. 특별히 공부 안 해도 뭐 그냥… 아 그런데, 그거보다는 오케스트라를 위해서라도, 또 내가 힘들더라도 좀 레퍼토리를 하나 개발해야 한다, 이런 뜻이 강했고.

(말솜씨가 대단하다. 인터뷰를 여러 차례 해본 관록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박은성: 그 담에 두 번째, 월튼 비올라 협주곡을 택한 이유는, 아시겠지만 내가 택한 건 아니거든. 솔리스트(협연자)가 택했지. 그럼 솔리스트는 어떻게 택했느냐? 솔리스트가 아주 젊어요.
김원철: 네.
박은성: 아직 25세가 안 됐다고. 24세? 아직 그 정도일 텐데.

비올리스트 박경민

▲ 협연자 박경민. 1990년생, 만 21세.

박은성: 지금 독일에 있거든? 알죠?
김원철: 네.
박은성: 작년에 동아 콩쿠르 1등 하고, 독일에서 무슨 콩쿠르 1등 하고, 또 하나는, 작년인가? 그것도 작년인데, 영국에서 비올라만 하는 콩쿠르 있다고.
김원철: 네, 라이오넬 테르티스(Lionel Tertis) 콩쿠르 2등 했더라고요.

(라이오넬 테르티스는 이번 공연에 연주될 '월튼 비올라 협주곡'을 세계초연할 뻔한 ― 세계초연했다고 잘못 썼다가 나중에 고침. 월튼이 테르티스를 생각하고 이 곡을 썼으나 테르티스가 거절해 파울 힌데미트가 초연했다 ― 영국 출신 비올라 연주자이다. 라이오넬 테르티스 콩쿠르 입상할 때에도 월튼 곡을 연주했는지를 박경민 씨한테 물어 봤더니, 그건 아니란다. 버르토크 비올라 협주곡이 지정곡이었다고.)

박은성: 뭐, 다 조사를 했네. 그런 정도면 유럽에서 그만큼 인정받은 솔리스트인데, 한국에서는 아.무.도. 몰라요. 아무도 몰라.
김원철: 네에.
박은성: 근데 작년에 동아 콩쿠르 1등 했기 때문에 올해 코리안심포니하고 나하고… 여름인가 언젠가 연주를 한 번 했다고. 하니까, 야아! 아, 이런 솔리스트가 왜 이렇게 안 알려지고 있느냐 이거야. 이왕이면 이거 경기필하고 한 번 붙여 보자. 그래서 그걸 했고.

박은성: 《마탄의 사수》는… 뭐, 계속해서 하면 안 되죠. 어려운 곡을. 세 곡을 갖다 내면. 그럼 《마탄의 사수》 서곡 정도는 경기필이 굉장히 쉽게 소화할 수 있는 곡이라고 생각해서, 레퍼토리는 그렇게 구성이 됐는데, 나 혼자만의 생각인지는 몰라도 레퍼토리는 대단히 훌륭하다고 생각하는데.

김원철: 그러니까 드보르자크를 특별히 더 좋아하신다거나 그런 건 아니로군요?
박은성: 노(No). 그건 아니고, 내가… 모르겠어요, 지휘 생활이 (앞으로) 얼마나 될지. 지금 나이가 들 만큼 들었지만. 에… 알죠? 내가 금년에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떠난 거. 내가 오케스트라를 가지고 있다면 혹시나, 내가 지금 몇 개를 생각하는 작곡가가 있어서, 작품 전곡을 다 연주할 수 있는 거를 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서, 브루크너는 수원(시향)하고 거의 다 했다가 몇 곡만, 두 곡인가 세 곡을 남겨 놓고 아직 못 했는데, 그때 내가 수원시향을 떠나서 코리안심포니로 옮기는 바람에 그렇게 됐거든. 근데 코심은, 일단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옮기면 거기에 정착하고 소리를 만드는 데 몇 년이 걸린단 말이지. 그래서 그거 하느라고 계속 못 했고. 또 내가 학교도 은퇴하고, 저쪽(코리안심포니)에 또 임기도 끝나고.

(객원 지휘자와 상임 지휘자가 결정적으로 다른 대목. 지휘자가 오케스트라 소리에 자기 색깔을 온전히 담아내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구자범 지휘자도 몇 해 지나서 비슷한 시도를 하면 좋겠다. 말러 교향곡 전곡, 베토벤 교향곡 전곡, 바그너 오페라 전곡, 푸치니 오페라 전곡 등.)

박은성: 혹시 앞으로 기회가 있어가지고 내가 내 오케스트라를 가질(맡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브루크너도 전곡을 했으면 좋겠고, 드보르자크도 마찬가지고. 그건 이유가 뭐냐면, 조금 전에 얘기했듯이 한국 사람들이 아는 건 드보르자크는 '신세계'(교향곡)밖에 몰라요. 그럼 지휘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면, '신세계'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냐? 그렇지 않다고요. '신세계'보다는 오히려 8번을 더 좋아할지도 모르고, 개중에는 7번 교향곡을 더… 금년에도 내가 다른 교향악단이랑 '신세계 교향곡'을 여러 번 했다고.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는, 무엇보다 4악장은 운동 경기장에서도 곧잘 들을 수 있어서 우스갯소리로 '응원 교향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대한민국 386세대는 이 곡을 '전대협 팡파르'라고도 하던데…)

▶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에 관한 박은성의 해석은?

김원철: 그러면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에 대해서 조금 더 여쭙겠습니다. 이 곡에서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시는 대목을 한 군데만 말씀해 주세요.
박은성: 어, 그건 굉장히 얘기하기 어려운데. 어느 악장을 얘기하라면 그건 얘기하기가 좀 쉽게 되겠지. 근데…
김원철: 어느 악장을 가장 좋아하세요?
박은성: 근데 그걸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인제 1악장의 뭐 어떤… 테마(주제선율) 나오는 데가 좋다고 하고, 또 2악장 느린 걸 좋다고 그러는데… 3악장을 경청해 주시기 바란다고 얘기를 해야겠네요. 그것이 굉장히 경쾌한 리듬이 깔렸으면서도 뒤에 흐르는 선율이 아주 아름답거든. 그러면서도 조용할 때 조용하고, 몰아칠 때 아주 대단히 몰아치는… 그리고 4악장, 다 좋고요. 어느 악장 빼놓을 악장이 없어. 연주를 어떻게, 내가 어느 만큼 하느냐가 문제지, 작품이야 뭐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김원철: 그러면 특별히 이 곡 해석과 관련해서 본받고 싶은 지휘자나 레퍼런스(reference)로 삼을 만한 음반이 있다거나, 그런 게 있나요?
박은성: 내가 별로 어… 음반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저건 없는데, 드보르자크에 관한 한 특별히 대가로 치는 몇 사람이 있어요. 에, 그것은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오래전에 상임지휘자로 있던 바츨라프 노이만(Václav Neumann). 그 사람 리코딩이 아주 좋고. 그 담에… 아주 옛날 거예요. 이슈트반 케르테스(István Kertész)가 한 거, 그거 굉장히 좋다고 생각되고. 그 담에 얼마 전에 또 들어보니까 그… 줄리니(Carlo Maria Guilini)! 영국서 라이브 리코딩 한 거. 그 연주 아주 크게 감동했어요. 실제 연주인데도 아주 그냥… 실제 연주이기 때문에 더 생동감 있고, 그까짓 실수 하나 둘 있으면 어때. 아주 굉장히 좋고. 굳이 하나를 꼭, 나보고 추천하라면 줄리니 거를… 줄리니, 그 담에 또 옛날 사람들이 연주 잘하더라고. 조지 셸(George Szell)! 클리블랜드(오케스트라), 그것도 대단히 좋아요. 뭐, 다 좋아요. 근데 어쨌든, 바츨라프 노이만 거는 한 번 들어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이 되고. 그 외에도 리코딩이 굉장히 많거든.

(음악가는 저마다 추구하는 음악적 개성이 있기 때문에 음반 마니아가 되기는 어렵다. 그래서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여쭈었는데 웬걸, 이름이 줄줄 나온다. 지휘자 박은성이 음반 마니아일 리는 없고, 이런 것도 연륜과 관록 때문일까.)

김원철: 선생님은 지휘자이시니깐요, 좀 더 구체적으로 프레이징(phrasing)에 관해서 한 군데만 여쭙고 싶은데요, 3악장 말씀하셨으니깐,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더라…

(악보를 깜박하고 집에 두고 오는 바람에 노래를 불러 드렸다.)

▲ 라파엘 쿠벨리크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DG

김원철: …따단딴 딴! ! 이렇게 약박에 포르찬도(forzando)가 있단 말이에요.

※ 포르찬도: 악보에서, 특히 세게 연주하라는 말. 기호는 ‘fz’ 또는 ‘∨, <’. ≒포르차토. (표준국어대사전)

▲ 3악장 마디 4~5. ©Public Domain

▶ 자연스러움과 참신함 사이

김원철: 거기뿐만이 아니라, 포르찬도가 이 작품에 굉장히 많이 쓰였는데, 드보르자크가 포르찬도를 쓸 때에는 어떤 의도로…
박은성: 아니, 어떤 의도가 아니라 그건 그야말로 악센트라고. 근데 그거 지금 굉장히, 음악 내용도 그렇고 굉장히 많이 아시는데, 뭐 나보다 더 잘 아는데 그걸 물어봐서 뭐해?
김원철: 아, 제가 인터뷰를 하려고 악보를 좀 보고 왔습니다. 하하.
박은성: 드보르자크가 거기뿐만이 아니고, 작품을 보면은, 지휘자가 애먹는 경우가 많아요. 드보르자크는. 예를 들어서 베토벤은 오히려 분석이라던가 이런 게 쉽거든. 네 소절 단위로 나간다든가… 악보 얼마만큼 보셨는지 몰라도 이걸 분석을 해보라고.

(이하 원론적인 말씀이 길게 이어짐. 그래서 좀 더 구체적으로 캐물었다.)

김원철: 그러면 그 바로 앞에 나오는 강박보다 더 세게 해야 할까요?
박은성: 당연히야.

김원철: 어, 그러면 아예 마르카토(marcato)… 그렇게 확실하게 (세게) 가야 할까요, 아니면 너무 튀지는 않게 좀… 메사 디 보체(messa di voce) 그런 식으로… 그러니까 스포르찬도(sforzando)가 아니고 그냥 포르찬도거든요. 그게 스포르찬도에 가까운 포르찬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 마르카토: 악보에서, 음 하나하나를 끊어서 똑똑하게 연주하라는 말. (표준국어대사전)
※ 메사 디 보체: 일정한 음을 길게 끌면서 천천히 음량을 크게 하였다가 다시 음량을 줄여 끝내는 창법. 18세기 벨칸토의 중요한 발성 기법으로 발성 연습에 널리 쓰인다. (표준국어대사전)
※ 스포르찬도: 포르찬도와 비슷하나 좀 더 갑작스럽게 연주하라는 뜻. 수비토 포르찬도(subito forzando).

박은성: 사람들이 스포르찬도하고 지금 말씀하신 거하고 뭐가 다르냐고 그러면, 어디 구별할 수 있어요?
김원철: 결국은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애매하죠. 사실은.
박은성: 사실은 같은 건데, 지휘과 학생들한테도 그게 큰 숙제라고. 그게 뭐 어떤 차이가 있느냐. 's' 하나 더 들어간 것뿐이거든. 'fz'라고 쓴 거를 뭐라고 발음했어요?
김원철: 포르찬도.
박은성: 포르찬도. 포르찬도라고 얘기해도 틀린 건 아니에요. 그런데, '포르차토'(forzato)…
김원철: 네. 아, 사실은 그게 맞겠죠.
박은성: 그렇게 발음해야 하는 거예요. (원론적인 말씀 끝에 종이에 음향적 윤곽을 그림으로 그려 가면서 설명.)

('포르차토'와 '포르찬도'는 이탈리아어 문법 얘기인데, 자세한 내용은 글쓴이도 잘 모른다. '포르찬도'가 현재진행형이었던가… 그러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포르찬도'가 대표어로 나오므로 이 글에서는 앞으로도 '포르찬도'라 쓰겠다.)

김원철: 그러면 아까 그 대목에서는 이것, 둥근 게 맞다는 얘기죠?

(종합해 보면 위에 인용한 쿠벨리크 녹음을 좀 더 둥글게 다듬은 정도가 될 듯하다.)

김원철: 음반을 들어보면요, 지휘자에 따라 이 대목을 조금씩 다르게 하는데, 아르농쿠르 같은 사람은 (각지게 그린 음향 윤곽 그림을 가리키며) 아예 이렇게 하더라고요. 모나게. 들어보면 참 특이하다… 어떤 사람은 그냥 강박이랑 약박이랑 비슷한 음량으로 가기도 하는데…

▲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지휘,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Warner

(위 녹음을 들어보면 다섯째 마디에서 '포르찬도' 음을 매우 두드러지게 연주했음을 알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포르찬도'를 강조하고자 바로 앞선 음을 짧게 끊기까지 했다. 아울러 느리게 시작해서 템포를 조금씩 조이기까지. 악보에 있는 작은 지시까지 매우 꼼꼼하게 살린 쿠벨리크-베를린필 녹음과 견주면 큰 차이가 있다.)

박은성: 그 사람은, 지금 얘기한 그 사람(아르농쿠르)은, 굉장히 독특한 어떤 새로운 걸 갖다가 시도를 많이 하고 그런 사람인데, 음악의 분위기를 그렇게, 잇지 않고 그렇게 처리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자극적으로 듣기 때문에, '아! 역시 대가가 다르구나!' 이렇게 들릴 수 있다고. 그렇게 볼 수 있다고. 물론 그래요, 틀림없이… 자기가 그렇게 한다면 그만이지 그걸 누가 뭐라 그래. 그러나 나는 그렇게 안 해. 음악 전체의 분위기를 보구선 그걸 결정을 해야지.

(참신한 해석이라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자연스러움을 일부 희생한 결과다. 그리고 참신함을 좇을수록 자칫 음악이 천박해질 위험이 커진다. 얼마만큼이 적당한가를 판단하는 일은 지휘자 성향에 달렸다고 할 수 있겠는데, 지휘자 박은성은 과연 얼마만큼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지를 묻고자 이렇게까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인용한 대목에서 활놀림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좋을지까지도 물어봤으나 내용이 너무 전문적으로 흐른다 싶어 생략.)

김원철: 그러면 이 곡 악보를 보면 메트로놈 지시가 일일이 붙어 있는데, 그걸 의식하시는 편인가요 아니면…
박은성: 참고만 하지 내가 의식을 안 해요.
김원철: 네에.
박은성: 처음에 메트로놈, 써있는 것도 별로 마음에 안 들어요. 2악장도 마음에 안 들고. 2악장도 거기 걸로 하면 내 생각보다 조금 느려. 도중에는 그 템포로 갈 수 있는데, 시작부터 그렇게 가면… 나는 못 끌고 나간다고. 꼭 그대로는… 그건 참고사항이지 그대로 갈 수는 없어요.

▶ 박은성이 어렸을 때

김원철: 그러면 까다로운 질문은 다 지나갔고요. (웃음) 어린 시절 얘기를 좀 해주시죠. 1945년생이시죠? 6·25를 겪으셨을 텐데 그게…
박은성: 아니…
최종혁: 신상정보까지…
일동: 하하하…
박은성: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직업상 인터뷰를 얼마나 많이 했겠어.
김원철: 네.
박은성: 이런 사람 처음 보네.
일동: 크하하하하…
박은성: 말씀하세요.

김원철: 어릴 때 고향이 어떤 이미지로 남아 있나요?
박은성: 어릴 때 고향? 고향에 대한 얘기는 이제 두… 가지로 얘기해야 하는데, 나는… 이북에서 태어난 사람이기 때문에 한국식으로 얘기하면 고향이 지금 없다고. 내 고향이 함경북도 회령인데, 사람들이 내가 나이 들고 그러니까, 거기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부모가 거기서 생활하시고 그래서 부모 고향 따라서 함경북도 회령이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고 나는 출생을 함경북도 회령에서 출생을 해가지고 월남할 사람이라고. 돌 되기 전에. 그러니까 이북에 대한 건 아무것도 모른단 말이지. 그걸 여기 와서 내가 얘기도 안 했거든. 그러니까 아무도, 내가 사투리도 안 쓰니까 함경북도 사람이라는 걸 한국 음악계에서 아무도 몰라요. 재밌는 사실이지.

김원철: 그거 ○○○ 검색하니까 다 나오던데요? (웃음)
박은성: 그걸 누가 그랬는지 알 수가 없는데, 아마 그 이후에 얘기가 됐는지도 몰라요. 평양에 가니까 이북서는 알더라고. 여하튼 함경북도에 대해서는 내가 아는 바가 없으니깐. 그 담에 내가 생활했던 곳은 서울이 아니고 6·25 때 피난을 갔기 때문에 부산서 국민학교(초등학교)를 들어갔단 말이지. 그때 영도에서 살던 그… 대마도. 쓰시마 섬을 바라보면서 꿈을 키우던 그 기억만 있지.

(그러니까 자란 곳은 부산이란다.)

김원철: 그러면 음악은 언제쯤 시작하신 거예요?
박은성: 요즘 학생들 생각하면 (나는) 음악을 엄청 늦게 시작했죠. 그 당시에는 내가 (음악을) 시작한 게 무지하게 빨랐어. 아홉 살 때 시작했으니까. 그 당시에 중학교 들어가서도, 아니면 고등학교 들어가서, 뭐 하다못해 대학 들어가기 직전에 적당히 해서 대학 들어간 사람도 많았던 시절이니까. 아홉 살이면 굉장히… 요즘은 아홉 살에 시작해가지고는 음악가 행세를 못 해요.

(1945년생인데 아홉 살 때부터 음악을 시작했단다. 놀랍다.)

박은성: 그리고 그 당시에 내가 더 (일찍) 할 수도 없었던 것은…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봐요. 바로 그때가 6·25 전쟁 중인데 악기를 어디서 사? 선생을 어디서 구해? 그건 불가능하거든. 그래도 내가 음악 시작할 수 있었던 건 정말 행운이고. 그래서 그런 행운을 가졌던 거는, 그 당시에 교향악단이라는 건 없었고, 해군정훈음악대라는 게 있었거든. 해군정훈음악대가 해군교향악단. 그것이 오늘날 서울시립교향악단이 된 거예요. 거기에 악장 선생님이 내 은사님이라고.
김원철: 오오오. 아홉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하신 거군요?
박은성: 아! 좀 창피한 얘긴데, 바이올린 했지. 바이올린 했는데, 아무튼 죽어라고 하기 싫어했으니까.
김원철: 으허허허허…
박은성: 아니, 그것도 (남 연주를) 들어보면 너무 멋있는 거야. 근데 내가 해보면 '끼익 꽤엑~~'
김원철: 으하하하하…
박은성: 세상에서 제일 듣기 좋은 악기가 바이올린이야. 너무 기가 막혀요. 못하는 사람이 할 경우에는 제일 듣기 싫은 게 또한 바이올린이라고. 그 소리를 어떻게 들어주느냐 이거지. 그래, 난들 그걸 듣고는 참고 (연주)하겠냐고. 애기가. 참 힘들었다고.

(옛날이었으니까 악기가 그리 좋지도 않았겠지. 상상이 간다.)

▶ 지휘자가 된 사연

김원철: 그러면 지휘로 바꾸게 되신 계기는 뭐였을까요?
박은성: 그건 너무 유명한 얘긴데?

(몰라서 물었다기보다는, 모르는 독자가 있을까 봐… 지, 진짜다. 크흠.)

박은성: 대학에 들어가니까, 그 당시는 대학 들어가도 바이올린 잘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던 시절이니까, 내가 들어가 보니까 그냥 학교 내에서는 할 만큼 할 수 있겠더라고. 그래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러니까 뭐 음악대학에서 정기연주회 솔리스트로 나가기도 했고, 음악대학 오케스트라 악장도 했고 그랬는데, 방학 동안에 한 번 선생님한데, 방학 동안에 학교 레슨(개인지도)이 없으니까, 레슨을 가야 되겠다 생각하고 선생님한테 갔는데, 내 앞에 어떤 쪼~끔한 녀석이, 국민학교(초등학교)야. 그 녀석이 선생님한테 레슨을 받는데,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콘체르토(협주곡)를 하는데, 기가 막히게 잘해서 '누구야? 나는 안 되겠구나.' 그때부터 마음을 접었었죠. 그게 누구냐면 강동석이에요.
김원철: 아! 허허허허허…

강동석

▲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

김원철: 그리고는 빈 국립음대로 가신 거예요?
박은성: 아니, 그리고 한참 있다가… 음악대학 졸업하고… 그다음에 KBS 교향악단. KBS 교향악단이라는 게, 지금 KBS 교향악단 전신이 국립교향악단이고, 국립교향악단의 '또' 전신 KBS 교향악단. 그 KBS 교향악단에 입단해가지고 악단 생활을 몇 년 하다가, 거기 지휘자가 나를 발탁해서 그쪽 (오스트리아) 오케스트라로 데리고 갔다고. 그러고 있으면서 연주 생활을 하는 동안에 내가 거기서 비엔나 국립음대를 입학을 했지.

김원철: 네에. 거기서 오트마 주이트너(Otmar Suitner)를 사사하셨는데, 주이트너 선생님한테 뭘 배웠나요?
박은성: 그걸, 뭘 배웠는지 나도 몰라요.
김원철: 으허허허허…

박은성: 근데, 처음엔 오트마 주이트너한테 갈 생각을 안 했어. 왜 그리로 가게 됐냐면, 날 데려간 선생님이 오스트리아 사람이기 때문에, 또 비엔나 국립음대를 나오시고 그랬으니까 그랬겠지만, 오트마 주이트너라는 사람이 나는 누군지도 몰랐어. 전혀 몰랐는데… 아바도의 스승, 주빈 메타의 스승, 그러니까 다 잘 알 거야, 한스 스바로프스키(Hans Swarowsky)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한테 한 번 배웠으면 좋겠다 해서 내가 비엔나 간 거거든. 비엔나보다, 우선 오스트리아 간 거거든. 도착하자마자 그분한테 누구 도움을 빌려가지고 편지를 썼다고. 나는 한국에서 온 누구누군데, 오래전부터 당신에 대한 명성이랄까 뭐 이런 걸 익히 알고 있다고. 실력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모르겠고, 그러나 아무튼 선생님한테 배우고 싶어가지고 내가 한국에서부터 여기까지 왔는데, 좀 기회가 있으면 찾아뵙고… 얘기를 좀 듣고 싶고, 그럴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선생님 제자가 되고 싶다고, 이렇게 했는데, 뭐 한 달이 돼도, 두 달이 돼도, 소식이 없어요. 그 편지 보낸 지 한 석 달쯤 되니까, 오스트리아 신문에 났어. "한스 스바로프스키 사망."
김원철: 으허허허허…

박은성: 그러니까 내가 편지를 썼을 때, 그분은 병원에… 그래서 굉장히 실망을 하고, 내가 그 사람한테 배우긴 틀렸다, 그래가지고 여름에 모차르테움(Mozarteum), 잘츠부르크에 있는. 거기 여름학교가 있어요. 인터나치오날 좀머 아카데미(Mozarteum International Sommer Akademie), 거기서 지휘 클래스(과정) 들어가서 공부를 하는데, 거기 지도교수가 오트마 주이트너야.
김원철: 아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국제 여름학교가 궁금하신 분은: http://www.moz.ac.at/de/kunst/soak.php)

박은성: 그 선생한테 굉장히 인정을 받았다랄까, 그래가지고… (학교 다니면서) 일을 하고 있었으니까… 3년을 계속해서 그 코스에 다녔는데, 마지막 해에 또 신문에 난 게 뭐냐면 한스 스바로프스키 후임으로 오스트리아 대통령이 오트마 주이트너를 국립음대 지휘과 교수로 임명했다고. 친서를 줘 가면서. 그래서 또… 그 선생은 (나를) 잘 아니까, 선생님 제자가 되고 싶다고. 그래, 내가 일을 하고 있으니까 들어갈 저거는 안 되고. 또 지금 내가 음악 이론이다 뭐 등등 공부해 본지… 너무 오래됐기 때문에 나는 입학할 실력이 안 된다고. 그런데 개인 레슨 좀 받을 수 있겠냐고. 근데 그 선생이 아주 단칼에… 자기는 개인 레슨 해줄 시간이 없다고, 니가 배우고 싶으면 시험을 거쳐서 국립 음대… 국립 음악원. 음악대학이 아니야, 그 당시에는. 그렇지, 음악대학이라고 해야지. 호흐슐레(Hochschule; '대학'에 해당하는 독일어). 그전엔 아카데미(Akademie)라고 했거든. 국립 음악원. 음악대학. 거기 시험을 치는데, 그 스토리는 너무너무 길어요. 그거는 얘기 안 해도 되고.

(옛날에 공부했던 이론 책을 모두 한국에 두고 오는 바람에 독일어 책으로 새로 공부해야 했다며, 박은성 지휘자는 그때 일을 '악몽'이라 회상했다. 결국, 10대 1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고.)

▶ 박은성의 사랑 이야기

박은성: 근데 왜 그렇게 내 라이프 스토리(인생 얘기)를 궁금해해요?
김원철: 그건, 인터뷰에 내러티브(narrative)를 담으려고요. 하하하… 그것 못지않게 궁금한 것은… 선생님 첫사랑 얘깁니다. 으허허허허…
박은성: 나는… 첫사랑… 어떤 게 첫사랑인지 기억을 못 해요. 첫사랑이 누구라고 얘기하면 나, 집에서 내쫓겨난다고.
김원철: 크하하하하…
박은성: 아니, 그게 아니고, 진짜 그걸 기억을 못…

(이하 내용 삭제. 사실은 별 내용 아니지만, 이런 건 삭제해 줘야 더 재미있다.)

김원철: 사모님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박은성: 그 사람은 내가… 비엔나에 있는 동안에… 미국서 만났지. 왜 그랬냐면 우리 집이, 아버지도 그 당시에 뉴욕에 계셨고, 뉴욕 한국일보사에 주간, 이랄까… 또 뉴저지에 있는 시튼홀 대학교(Seton Hall University) 교수로 있었기 때문에, 집이 뉴욕에 있었단 말이야. 내가 매년 뉴욕에 방문차 갔었는데, 하루는 서울서부터 잘 알던 어떤 음악가가 나보고, 내가 하도 장가를 못 가고 꿍꿍거리고 앉았으니까, 케네디 공항까지 나와가지고 집에 들어가면서 장가 한 번 안 가보겠냐고. "어유, 왜 안 가봐, 색시가 없어서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못 갔지 내가 왜 안 가. 당연히 가지." 그랬더니, 그럼 왜 없느냐? 그것도 간단해요. 그 당시 비엔나라는 데가 어떤 데냐면, 전체 오스트리아에 한국 사람이 한 300여 명 살았나? 지금은 비엔나만 해도 2000명이 넘어요. 유학생도 많고. 그 당시에는 없어. 그 중에서 또 비엔나 말고 뮌츠, 잘츠부르크, 그라츠, 인스부르크, 이런 데까지 퍼져 있는 이 사람들 빼고 비엔나에만 한 200여 명이 살았나? 200여 명 중에 남자들은 다 빼야지. 할아버지고 애들이고. 여자들 중에… 할머니도 다 빼야지. 애기들 빼야지. 그 담에 처녀들 중에, 몇 사람 안 남더라고, 그중에 못 생긴 여자는 빼야지.
김원철: 으하하하하…

박은성: (웃으며) 뭐 그러니까, 그러니까 없어. 그래서 뭐 그런가 보다, 내 팔자가 이런가 보다 하고, 그냥 이러구 있었는데, 미국서 그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하니까 그게 구세주지 뭐야.

▲ 하느님, 예쁜 애인 하나만… (출처 불명 이미지)

박은성: 근데 내가 뭐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도 아니고… 물론 구라파(유럽) 가기 전에 악단 생활을 임원식 선생님의 배려로 서울예술고등학교 선생도 했었고, 국립교향악단 객원지휘도 했었고, 서울시립교향악단도 지휘했었고… 그야말로 어린 시절에 지휘활동 많이 했지. 했지만, 그것보다도 내가 기본적인 실력이 훌륭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뭘 잘하는 사람을 늘 동경해 왔는데, 미국서 우리 색시를 만나 보니까…

('색시'라는 말에서 사랑이 묻어난다.)

▲ 피아니스트 이귀영의 5·16 민족상 콩쿠르 우승 소식을 전한 1970년 5월 23일 자 대한뉴스.
(사진을 클릭하면 동영상 다시 보기로 이동합니다.)

박은성: …어렸을 때 그 당시 한국에서 최고로 쳐주던 콩쿠르가 5·16 민족상 콩쿠르였단 말이지. 동아콩쿠르보다 훨씬 더 센 콩쿠르야. 박정희 대통령이 만든 콩쿠르. 우리 집사람이 거기 대통령상을… 대상을 받았더라고. 어유, 이건 뭐 난 꿀려서… 엣따 모르겠다, 이왕… 다짜고짜 만나서 나한테 시집오라고 그랬지.
김원철: 으허허… 만나자마자 그러셨어요?

(최, 최고다…)

박은성: 나이도 많지, 나야 아무것도 없지, 그 당시에 아직 학생이니까. 어떤 사람이 자기 딸을 갖다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한테 줘? 아직도 지휘과 다닌다고 그러지, 또 지휘과 졸업했다 치더라도 지휘자로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 그걸 어떻게 알어? 그건 모험이지. 근데 뭐 딱지 맞고 이러다가 그냥… 그래도 '창~문을 열어다오' 하는 심정으로… 결혼하게 됐어, 그래서. 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겨우 겨우 결혼을 하게 됐고.

(비결이 궁금했다. 캐묻다 보니 나온 비결은 바로…)

박은성: 그러니까 나는 비엔나에 있고… 오스트리아랑 미국이라는 나라가 대서양을 끼고 있는데 그게 될 리가 없잖아? 또 지금이야 뭐 공짜로도 전화 많이 하지만 그때 전화 한 통에 얼만 줄 알아요? 전화 한 통 걸려면… 뭐 이럴 때라고. 그러니까 편지로. 매일같이 편지 하나씩 쓰는 거지. 편지에 넘어갔어.
김원철: 네에. 오오오! 편지의 위력이…
박은성: 그러니까 요즘 젊은이들은 그걸 알아야 돼. 나는 당신을 사랑해, 어쩌고저쩌고 이거보다도, 글로 한 번 남기면 그게 훨씬 더 위력이 있어.
최종혁: 요즘은 이메일로 하니까…
김원철: 아, 근데 연애편지라는 건 어렵기로 소문난…
최종혁: 첫 줄 쓰기가 정말…
김원철: 쓰다가 구겨서 버리고 막… 으허허…

(사랑을 쓰려거든 ○○로 쓰세요.)

박은성: 연애편지라고 생각지도 않고 그냥…
최종혁: 거의 일기처럼 쓰셨나 보네요?
박은성: 그러니까 소식 전하는 거지. 오늘은 브루크너 하우스에 가서 무슨 교향악단의 연주를 들었는데, 그 교향악단 정말 훌륭하다… 아니면, 저 정도 오케스트라는 우리 악단보다 별로 나은 것 같지 않다… 지휘자도 나보단 낫겠지만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어, 뭐 이런 내용도 쓰고. 피아니스트 누가 왔는데… 그런 음악적인 내용, 그리고 뉴욕서 어떻게 지내느냐, 그럼 그쪽에서도 오늘 모스크바 방송교향악단이 왔는데 지휘자는 드미트리 키타옌코였다… 한국에 왔던. 키타옌코가 바로 비엔나 아카데미 출신이거든. 그래서 그런 얘기 하고.

(드미트리 키타옌코. 1999년부터 2004년까지 KBS교향악단 상임지휘자를 맡았던 그 사람이다. 요즘은 베를린필을 객원 지휘하는 등 유럽에서 크게 인정받는 듯하다.)

박은성: 그래서 그런 얘기… 음악적인 뉴스 왔다갔다하고… 그러다가, 우리 심심한데 결혼 한 번 해볼까?
김원철: 으허허허…
최종혁: 편지를 아직 소장하고 계세요?
박은성: 어디 있을 거야. 그거 읽어보면 창피해서…
최종혁: 찢지는 않으셨네요. 으허허…
박은성: 찢지 않았어요.
최종혁: 창피하면 버리거나 그러는데…
박은성: 특히 우리 장모님이… 아직도 그… 나 죽을 때 되면 내놓을 거야.
김원철: 으허허허…
박은성: 부부싸움 할 때, 야 요 녀석아, 니가 요랬잖냐…
일동: 크하하하하~


그 뒤로도 제법 긴 얘기가 오갔지만, 글이 너무 길어지는 듯해서 이만 줄이고자 한다. 그러나 어쨌든 연애 이야기가 이날의 하이라이트. 짧은 지면으로는 다룰 수 없는, 그러나 흥미진진한 얘기를 담아내고자 "이런 사람 처음 보네"라는 말을 들을 만큼 별난 질문을 머리 짜내 생각해 내었다.

지휘자 박은성. 시대 상황을 헤아리면 제법 복 받은 환경에서 자랐고, 오스트리아에서 유학하면서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고생을 마다치 않은 끝에 빈 국립음대에서 오트마 주이트너를 사사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연애사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한국인다운 저돌성이야말로 인간 박은성을 잘 말해준다.

이런 박은성이 지휘하는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은 어떨까? 기대된다.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 연주회 (지휘: 박은성 · 협연: 박경민)

― 티켓 예매 ―

고양아람누리
http://www.artgy.or.kr/PF/PF0201V.aspx?showid=0000003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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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ticket.interpark.com/Ticket/Goods/GoodsInfo.asp?MN=Y&GoodsCode=11013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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