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23일 수요일

국립오페라단 《로엔그린》 날림 후기

모 게시판에서 국립오페라단 《로엔그린》을 까는 글을 보고, 삘 받아서 한 마디.

그 글 쓰신 분과 달리, 저는 엘자 역을 맡은 서선영 씨가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론 정통 바그너 가수와는 다른 이탈리아 오페라스러운 발성이었고, 딕션 등 문제 삼을 곳도 많았지만, 그걸 감안해도 훌륭했다고 생각해요. 엘자 역이 바그너 작품치고는 이탈리아 오페라스러운 데가 있다는 다른 분의 반론에 더해서, 저는 사실 예전부터 서선영 씨 목소리가 바그너를 해야 할 목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공연에서 그 가능성을 충분히 확인했고, 서선영이 부르는 '이졸데'를 듣고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졸데라는 '캐릭터'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 여성인데, 그런 캐릭터를 표현하는데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목소리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바그너를 할 만큼 묵직한 목소리이면서 부드럽고 여린 목소리를 기막히게 낼 수도 있는 가수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사실은 제가 예전에 말러 교향곡 4번을 협연할 가수를 찾다가 원하는 가수가 모조리 일정이 안 맞아서, 서선영 씨를 후보로 고려한 적도 있습니다. 그 당시 대표님께 보낸 이메일을 보니 '이졸데에 어울리는 목소리'라는 평가를 그때도 했었네요. 그래도 말러 4번을 하려면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고, 이번 공연에서 그 가능성까지 확인했습니다. 정통적인 해석과는 거리가 있을지라도 말이 안 되는 선택은 아니겠다고요.

그리고 김석철 씨. 역시 옛날부터 바그너를 해야 할 목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김석철 씨를 처음 알게 된 게 2009년 TIMF앙상블의 말러 《대지의 노래》 공연 때였는데, 쇤베르크와 라이너 린이 소편성으로 편곡한 판본을 협연했죠. 그때 블로그에 뭐라고 썼지 싶은데 찾을 수가 없네요. 기억에 의존해서 당시 느낌을 되살리자면, 탁월한 바그너 가수가 될 가능성이 있지만 '컨트롤'에 문제가 있더라,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이번 공연에서 그 단점을 제대로 극복한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이 정도면 십수 년 안에 바이로이트에서 한국인 지크프리트를 볼 날을 기대해도 좋겠다 싶을 정도. 십수 년을 내다본 것은 바이로이트 시스템과 한국인 페널티를 고려해서입니다. 사무엘 윤 선생이 바이로이트에 진출했을 때도 십수 년을 내다보고 '예언질'을 했었는데, 행운이 따라서 그보다 일찍 거물이 되셨죠.

쓰는 김에 생각난 것 하나. 3막 간주곡(사열식 장면)에 나오는 브라스 대폭발을 오프스테이지 밴드로 처리한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극적 사실감을 높이려면 그게 옳을 수도 있겠지만, 음악적으로는 그게 아니라고요. 결혼식 합창 때도 그렇고, 백스테에지에서 지휘자 예비박이 제대로 전달이 안 되었는지(비디오 카메라가 있었을 텐데 이상합니다) 자꾸만 박자가 어긋난 문제도 있었지만, 그보다 간주곡 때는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듣자 하니 베를린 슈타츠오퍼(?)에서 악장과 금관 연주자 등을 데려왔다는 모양이던데예산의 힘 덜덜덜, 그 막강 화력을 무대 뒤에서 희미하게 들리게 하다니, 이런 낭비가 어딨나요? 차라리 무대 쪽 발코니에 연주자들을 올려서 돌비 서라운드 효과를 제대로 살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생각난 김에, 나님 경기필에 있으면서 이거 공연에 올릴 때 금관 (객원) 화력이 절망적인 수준이었던 것을 구자범 샘이 마지막 순간까지 연주자들을 집.요.하.게. 괴롭혀서 그나마 들어줄 만한 수준으로 만들어 놓은 현장:


여기까지만 씁니다. 연출 얘기는 안 할게요. 좋았다는 얘기 다른 분들이 많이들 했으니까요. 아참, 저는 마지막 날 공연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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