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20일 월요일

윤이상: 첼로 협주곡

통영국제음악제 프로그램북에 사용할 글입니다.


"감방에서의 지리하고 답답한 긴 하루가 지나가면 취침 나팔 소리가 울린다. 슬픈 멜로디의 나팔 소리, 그리고 깊은 정적이 시작된다. 나는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먼 산 속 절간에서 울려오는 목탁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어느 죄수가 사형될 때 스님이 그 영혼을 인도하기 위하여 염불하며 두드리는 소리라고…."

이수자 여사는 『내 남편 윤이상』이라는 책에서 윤이상의 경험을 이렇게 전한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작곡가는 1967년 한국 군사정권에 의해 독일에서 한국으로 납치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죽음을 기다리는 극한 상황을 경험했다. 스트라빈스키, 카라얀, 클렘퍼러, 슈토크하우젠, 홀리거 등을 포함한 유럽 음악인들의 구명 활동에 힘입어 약 2년 만에 석방 및 추방되었고, 작곡가 사후에 국정원 진실위의 과거사 규명으로 명예를 회복했다.

윤이상은 자신의 경험을 1975년부터 1976년에 걸쳐 첼로 협주곡에 담아냈다. "나 자신이 어린 시절에 첼로를 연주하였기 때문에, 나는 이 악기에 나의 자서전적 과정을 부여하였다. 나의 생각, 나의 경험, 그리고 나의 느낌들이 이 작품의 솔로 파트에서 같이 울리고 있다. 이 솔로 파트는 오케스트라에 의해 대변되는 세계와의 협연을 통해 나의 전 생애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김용환 옮김)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오케스트라 편성에 첼로가 완전히 빠져 있다. 음악학자 김용환은 첼로의 고립성에 주목하며 작곡가가 "독주악기와 오케스트라 상호간에 어우러지는 것을 포기한 유일한 협주곡"이라고 평가한다. 첼로와 오케스트라의 대립과 갈등은 이 작품을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며, 솔로 악기로만 등장하는 첼로는 홀로 외롭게 오케스트라와 맞서 싸운다.

단악장으로 된 이 작품은 크게 세 단락으로 되어 있다. 첫째 단락에서 갈등이 무르익으면 오케스트라가 멈추고 첼로의 '독백'이 시작된다. 첼로는 마치 거문고처럼 채로 퉁기는 소리를 내고, 얼마 가지 않아 오케스트라에 포위당해 충격적인 '패배'를 경험한다.

첼로의 두 번째 '독백'이 이어진다. 베이스클라리넷과 알토플루트가 '취침 나팔' 소리를 내고, 목탁 소리가 들려온다. 마치 배가 물결을 헤치고 나아가듯 미분음으로 미끄러지는 현 소리가 그로테스크하다. 첼로의 세 번째 '독백'이 이어진다.

마지막 단락에서 첼로는 '라'(A) 음을 향한 고행을 시작한다. 길고 처절한 노력 끝에 '솔'에 이르고, 다시 힘을 내서 반음 더 높은 '솔♯'에 이른다. 더 오르지 못하고 '솔♯' 음을 길게 내던 첼로는 마지막 힘을 모아 도움닫기를 한다. 솔♯, 거기서 1/4음 더!

그리고 첼로는 생명을 다한다. 오보에가 첼로를 대신해 '솔♯'에서 '라'로 상승한다. 트럼펫이 '라' 음을 이어받고, 음악이 끝난다.

'라'는 이상적 세계, 신의 세계, 도(道)의 세계를 상징한다. 윤이상은 자신의 작품에서 인간을 표현하는 악기는 '라'에 이를 수 없다고도 했다. 윤이상은 이 작품에서 처음으로 음악 외적인 '메시지'를 작품에 담기 시작했으며, 이때를 분기점으로 윤이상의 음악 양식 또한 큰 변화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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